해창갯벌 장승들, 새옷을 입다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13] '새만금의 봄'을 노래하다

등록 2006.03.22 16:08수정 2006.03.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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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장승벌이 모처럼 분주해졌습니다. 솟대를 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기도를 하는 사람 등 몇 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컨테이너 교회와 성당, 절과 교당 앞 장승도 모처럼 새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울긋불긋 갈아 잎은 옷들이 봄바람에 펄럭이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갯벌들을 어루만집니다.

갯벌 건너 방조제 입구에서는 수많은 깃발이 올려 졌고, 노래 소리도 들립니다. 정말 새만금 갯벌에 '봄'이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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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대법원 판결이후 지난 3월19일 새만금 전시관에 아래 방조제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새만금의 봄'을 알리는 임시무대가 설치되고 대형걸개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람도 몹시 불었습니다. 봄철이면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어댑니다. 새만금 갯벌에 생합씨, 동죽씨 등 풍요로운 생물들을 점지해주시고, 방조제 밖에 미역씨와 전복씨, 김씨를 뿌려는 주는 개양할미가 내려오려나 봅니다. 개양할미는 얼마나 큰지 서해바다 아무리 깊은 곳도 무릎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할미가 노여워 발길질이라도 한번 한다면 신시도나 가력도의 배수갑문은 성냥갑 부서지듯 무너질 겁니다. 4공구도 한번만 밟고 지나가면 물길이 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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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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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어민들이 들었던 피켓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습니다.

"제 뱃속만 살찌우는 강현욱은 회 먹지마라."
"새만금 연안 피해어민 생계대책 강구하라."
"개발야욕 거짓선전 전라북도 규탄한다."
"올해도 조개잡고 내년에도 조개잡자."
"서해어민 다 죽는다 새만금사업 중단하라."
"어차피 죽을 목숨 바다에서 죽고잡다."


누가 저 어민과 도요새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그 중 무대에 걸려있는 걸개그림과 좌우에서 늘어뜨린 현수막이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모읍니다.


"갯벌은 생명의 어머니, 죽음의 방조제를 터라, 새만금 갯벌은 살아야 한다."

걸개그림 안에는 그레질을 하는 여성어민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도요새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함께 살자는 망둥어', '갯벌에 살고 싶다'며 공사를 멈춰라 외치는 칠게, '생존권 사수'를 외치는 백합의 모습은 인간들의 탐욕을 부끄럽게 합니다.


갯벌을 찾은 도요새가 눈물을 짓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칠게와 갯지렁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넘쳐났던 칠게는 더 이상 새만금 갯벌에서 찾기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도요새가 먹기 전에 곳곳에 묻어 있는 인간들이 묻어 놓은 칠게잡이 함정어구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생합을 잡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생합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나선 탓입니다. 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따뜻한 '봄'은 방조제가 막히면서 차가운 '마음'으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도요새가 슬퍼하는 것은 순진하게 갯벌에 기대 살던 어민들이 욕심꾸러기로 변해가는 것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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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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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숭어도 잡고, 주꾸미도 잡던 어민들이 갯벌에 몰려들어 생합을 잡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도요새들의 먹이도 탐내고 있습니다. 도요새들이 눈물을 짓는 것은 단지 그들이 먹을 칠게와 갯지렁이가 없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어민들이 방조제를 보고 슬퍼하는 것은 몇 년 전 시화호의 마른 갯벌에서 본 '입을 벌리고 죽은 조개더미'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포도농사를 짓고, 밭일을 해야만 하는 시화호의 음도, 형도의 어민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오른 수녀도, 스님도, 농민도, 어민도 모두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습니다. 누가 저들을 눈물짓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슬퍼하기 위해서 '새만금의 봄'을 마련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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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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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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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방조제로 물길을 막더니 이제는 철조망으로 방조제를 가로막았습니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는 방조제를 질주하건만 '바다로 가고싶다' 어민들과 배는 물길을 막던 돌망태와 해창산의 육신들을 실어 나르던 버스에 막혔습니다. 이것도 부족해 전투경찰을 배치해 막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농민들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는 일에 함께하겠다고 나선 일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전문가들이 새만금 방조제가 마무리되면 부안, 김제, 군산 지역의 농민들도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새만금 갯벌을 막아 농지를 조성하는데 수조 원을 들이겠다는 노무현정부에 있는 농지나 잘 보전하고 생산된 쌀이나 수매해 달라는 농민들은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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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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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새만금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새만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야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듯이, 갯벌은 어민들에게 희망이고 미래입니다. 어디 어민들뿐이겠습니까. 도요새에게도 칠게에게도 황해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갯벌은 희망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새만금 방조제에서 뱃고동을 울리는 아이들에게도 갯벌은 희망입니다. 아이들은 이곳 갯벌에서 무한한 꿈을 그릴 수 있습니다. 방조제를 막아 농지를 만들고 공장을 지어 아이들에게 물려준들 그들이 꿈을 그려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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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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