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정조국장도감의궤' 책 표지국립문화재연구소
"심산궁곡의 많은 백성이
눈물을 흘리며 성군을 부르짖으며 통곡하네
저들이 어찌 교화를 알리오마는
백성을 근심하면서 부지런히 정사 보신 것은 안다네"
위는 병조 참지(=참의:조선 시대에, 육조(六曹)에 둔 정3품 벼슬) 김관주가 정조의 만장으로 쓴 글인데 정조의 국장 기록을 소상히 기록한 의궤(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 뒷날 참고를 위하여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자세하게 적은 책)를 현대어로 번역해 놓은 책인 <국역 정조국장도감의궤> 3권에 나오는 것이다. 정조임금의 승하에 백성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200년밖에 지나지 않은 조상의 일들을 잘 모른다. 그것은 대부분의 기록문서가 어려운 한문으로 되었기에 웬만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래서 옛 문헌을 발굴하여 이를 현대인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제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 이하 연구소)가 이런 옛 문헌들에 대해 국역하는 작업을 하고, 그 결과를 모아 책으로 내고 있다.
연구소가 이번에 펴낸 책들은 <국역 정조국장도감의궤> <문헌으로 보는 고려시대 민속> <조선시대 민속문헌해제> <종가의 제례와 음식> 7~8권, <굿과 음식> 따위가 그것이다.
먼저 <국역 정조국장도감의궤>는 1800년 정조(正祖)의 국장에 관한 기록인 <정조국장도감의궤> 총 4권을 국역한 것이다. 정조가 1800년 6월 28일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한 후, 장례를 치르는 과정 중에 창경궁 '환경전'에서 발인하여 장지(현재 경기도 화성 건릉)까지 옮기는 행사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내용이다.
당시는 임금과 왕실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다방면의 문화가 한층 발달한 때로써 가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국장(國葬)을 베풀었는데 이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담고 있다.
의궤에는 당시 벼슬아치들의 정조를 추모하는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만장(輓章)의 모든 내용, 상여에 쓰인 못의 개수, 상복을 짓는 데 참여한 침선비(針線婢)들의 이름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일방의궤(一房儀軌)의 공장질(工匠秩:공장의 항목)에는 목수, 소목장, 조각장, 병풍장 등 49개 분야의 장인들 명단도 수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후기 왕실의 제례의식과 더불어 당대 수공업의 현황, 만장질의 참여자와 서열 등을 통해 그 당시 정부의 구성과 역학관계 등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소는 올해에도 왕실문화의 출생풍속인 안태(安胎: 태아가 움직여서 임신부의 배와 허리가 아프고 낙태의 염려가 있는 것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일) 및 장태(藏胎:왕자나 공주나 태어난 뒤 탯줄을 잘라 항아리에 담아 길지에 묻는 의식) 관련 의궤를 국역할 예정이며, 지속적인 문헌자료 조사를 통해 한국민속문헌자료를 집대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민속문헌 해제’ 책 표지국립문화재연구소
또 연구소가 발행한 <조선시대 민속문헌 해제>는 각종 고문헌 목록에서 조선시대 민속관련 문헌을 골라 해제한 책이다. 이 책은 <경도잡지>(京都雜誌) 등 민속관련 문헌 304종의 해제로 농림수산, 의식주, 세시, 예서, 민간신앙 등 17항목으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엔 임란왜란 이후 민간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진 <과화존신>(過化存神), 태교 풍습과 관행을 살필 수 있는 <태교신기>(胎敎新記), 요리에 관한 내용만을 다룬 책으로는 가장 오랜 자료인 <수운잡방>(需雲雜方), 역병의 퇴치 및 예방을 위해 행한 <여제>(厲祭:나라에 역질이 돌 때에 여귀에게 지내던 제사)의 기록물인 <여제등록>(厲祭謄錄)' 등이 들어 있다.
이 해제집은 이해준(공주대 교수), 정승모(지역문화연구소 소장), 주강현(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 전재경(법제연구원 실장) 등 민속학계의 부문별 주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간 민속학계에서 요구되었던 "쓰인 기록자료"에 대한 적절한 연구와 점검, 활용을 위한 공동연구를 했다는 점에서도 발간 가치가 있다고 한다. 연구소는 앞으로 조선시대에 이어 구한말, 일제강점기 민속문헌 해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문헌으로 보는 고려시대 민속’ 책 표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소는 현전하는 고려시대 문인들의 문집 전체를 대상으로, 그 안에 있는 민속관련 문헌자료를 발췌, 역주한 '문헌으로 보는 고려시대 민속'도 펴냈다.
이 책에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 등 문집 38종에 수록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들 자료는 의식주생활, 세시풍속 등 22개의 대분류 항목과 기호음식, 민간요법 등 150개의 소분류 항목으로 분류하고 색인을 붙여 주제별로 찾아보기 쉽도록 하였고, 문집의 원문과 해당 쪽수를 표시해줌으로써 원문을 인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여기에 수록된 흥미로운 사례를 살펴보면, 우연히 뱀꿈을 꾸어 딸을 낳았다는 전설을 담은 <매호유고>, 논두둑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지냈다는 고사 내용인 <독곡집>, '대머리는 걸식(乞食)하지 않는다'는 속담인 <양촌집>, 불침으로 종기 트고, 통증 멎고 새살 돋는 덴 고약이라는 <목은고>, 그리고 줄타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동국이상국집>과 그동안 알 수 없었던 민간에서의 나례의식인 <운곡행록> 등 귀중한 자료들이 들어있다.
연구소는 이 책의 발간으로 이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관심을 증폭시켜 고려시대 민속연구가 활발해지도록 함으로써 그간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고려시대의 민속과 생활상들이 하나씩 복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종가의 제례와 음식’ 책 표지국립문화재연구소
또 연구소는 전통종가를 대상으로 제례의식과 음식에 대한 조사, 연구를 하고 <종가의 제례와 음식> 7, 8권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는 퇴계 이황(설날차례, 유두천신, 묘제, 불천위제), 충재 권벌(불천위제사, 추석차례, 묘제), 서애 류성룡 종가(불천위제사, 묘제)의 전통적인 봉제사에 대한 의식절차와 종가의 음식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제사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상 위에 차려 놓는 방법 따위가 사진자료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사례를 살펴보면, 퇴계 종가에서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려운 유두천신(流頭天神:유둣날 아침에 오이, 참외, 수박 따위의 햇과일을 차리고, 밀국수와 떡을 곁들여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올리고 있었으며, 늙은 종손을 배려해 조상의 혼을 집으로 모셔와 묘제를 지냈다.
충재 종가에서는 제수로 '동고떡'이라는 부르는 떡을 올리는데, 모양과 고임새가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리고 서애 종가에서는 불천위제사(不遷牌祭祀:나라에 공이 크거나 유명한 분들을 사대봉사에 의하지 않고 계속 지내는 제사)에 서애가 생전에 즐겼다고 전하는 '중개(혹은 중박계:음식의 이름)'를 올리는 등 오늘을 살아가는 종가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소는 오리 이원익 종가 등 4개 종가의 제례의식과 음식에 관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전통문화의 기초자료를 축적할 계획이라고 한다.
▲‘굿과 음식’ 책 표지국립문화재연구소
또 연구소는 최근 무속의례와 제물차림에 대한 조사·연구 성과를 모은 <굿과 음식> 1~3권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는 굿에 올리는 음식의 준비 및 조리과정을 비롯하여 진설(음식 차리기) 및 쓰임새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자료가 담겨 있다.
1권에서는 서울과 수원의 큰무당이라 할 수 있는 김유감, 오수복 만신의 진적굿(무당이 자신의 신령을 위해 정기적으로 행하는 굿)과 서울지역의 새남굿(망자를 천도시키는 굿)을 소개하였고, 2권에서는 경기 일대의 마을굿이라 할 수 있는 도당굿을, 3권에서는 해안지역의 풍어굿을 수록하였다. 또 생동감 있는 무속현장을 담은 46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놓은 듯 보이는 굿상의 음식도 그 내용을 보면 일정한 체계를 갖추어 차린다. 비리고 누린 음식을 싫어하는 신령을 위한 굿거리는 고기가 굿상에 오르기 전에 먼저 행해지기도 하고, 신령의 성격이나 급수에 따라서 올리는 음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손질이 더 필요하여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거피팥편(귀신을 쫓는 붉은색을 없애기 위해 팥의 껍질을 벗겨 만든 떡)은 보다 급수가 높은 신에게 올리며, 팥시루떡은 보다 낮은 신의 상에 올린다. 또, 하얀 백설기는 불교에서 유래한 신령이나 칠성신 등 천신(天神)에게 바치고, 맛이 고소한 콩떡은 무당의 조상신령에게 바친다. 이를 통해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신령의 입장을 배려하는 손님맞이의 정성이 담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굿 음식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학계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룬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 무속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기록 및 기초자료 구축을 위하여 무속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전통문화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알려지는 데는 현대어로의 국역은 절대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국역 책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책들을 보고 전통문화에 대한 감동이 있기를 바란다.
| | 현장위주 민속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 | | | [서면대담] 국역사업 총괄, 박상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 | | |
| | ▲ 박상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 | | - 옛 문헌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은 우리 문화 발전에 소중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소중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이 일을 기획하게 되었고, 추진했나?
"민속문화 조사연구는 그동안 민속 관련학회나 연구자들이 현장위주의 조사를 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장위주 민속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문헌조사 및 역주 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은 민속연구에 있어 문헌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국역 사업 중 어려웠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국역 사업 중 어려웠던 일은 없었다. 다만, 신문기사나 보도자료를 보고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보내주실 때 이 사업을 계획한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 친절한 설명은 번역의 올바른 방향으로 보이지만 일부는 여전히 설명이 안 된 부분도 있다. 또 <조선시대 민속문헌 해제>는 어려운 한문을 그대로 두어 해제란 말이 어색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조선시대 민속문헌해제>는 전공학자들을 위해 민속관련 문헌 304종을 해제한 것이다. 그동안 민속연구는 급속히 사라져가는 현장조사를 위주로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과연 우리 전통적인 한국 민속문화가 무엇인지 통시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조선시대 민속문헌해제>를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학문연구의 기초자료 확충과 민속연구에 있어 방향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시행하지 못한 탓에 좀 더 쉽게 정리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는 올해 국역부터는 고쳐나갈 계획이다."
- <종가의 제례와 음식> <굿과 음식>은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쉽게 쓰여 대중서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들은 전통생활문화의 보고인 종가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국인의 기층문화의 보고인 굿을 중심으로 조사한 연구보고서이다. 전통적으로 종손의 역할을 '봉제사 접빈객'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제례를 통하여 그 종가의 독특한 문화를 잇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생활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말미암아 주로 70대의 종손에 의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조사 대상도 40~50여 곳의 종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굿 역시 시대의 조류에 밀려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실정에 있는데 이러한 현실에서 시급히 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례와 음식을 현장조사하여 가감없이 기록한 책자로 발간했다. 이 책들은 생생한 사진자료를 곁들여 유가지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지봉유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조선의 백과사전류 책들 그리고 요리서인 <수문사설> 같은 책들은 오히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이는데 국역할 계획은 있는가?
"국역할 때 원칙은 국역서가 없는 고문헌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지봉유설>은 이미 국역서가 발간되었고,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오래전부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수문사설 등 의식주 관련 문헌은 국역을 검토해 보겠다." / 김영조 | | | | |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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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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