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25현 가야금, 플루트와 첼로를 이끌다

국립국악원에서 '이병욱과 어울림' 공연 열려

등록 2006.04.01 09:49수정 2006.04.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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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이병욱 교수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이병욱 교수김영조
그대! 어울림을 아는가? 세상은 어울림으로 사는 거라네. 누가 그랬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 말이야말로 어울려야만 세상은 행복한 거라고 외치는 것이지. 그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의 아름다운 국악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도 동서음악은 만나야 할 테지.

이런 철학을 음악에서 실천하는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은 꽃멀미 나는 봄날 밤(3월 30일 늦은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을 했다. 이병욱은 1988년 '어울림'을 창단하고, 전통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꿈꾸며, 대중에게 국악을 한 발짝 다가서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최초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인물로 꼽히는 그는 이 분야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이다.


연주회의 시작은 1990년 새 아침을 맞아 실내악 동인 어울림의 화합을 위하여 작곡했다는 '어울림을 위한 2006'이었다. 가야금, 기타, 대금과의 대화가 지속하다가 자진모리 장단으로 바뀌면서 밀양아리랑의 가락이 변주되며 이어진다. 이 음악은 이병욱의 기타와 함께 대금, 가야금, 25현 가야금, 거문고, 타악에다 첼로와 신디사이저가 더불어 연주한다.

이어서 연주한 음악은 한국방송(KBS) 창사특집 드라마 '땅울림'의 주제음악이다. 김정호의 파란만장한 역경과 고뇌를 통하여 마침내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게 된 감격을 한양합주 양식으로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윤주희씨가 연주한 해금은 걸쭉하고 명쾌한 소리로 첼로를 이끌어 간다. 갖은 편견 속의 우리 악기가 서양악기에 결코 뒤지 않고 당당한 소리를 내는 것에 나는 감동한다.

"대금, 가야금, 거문고를 위한 '꿈'"을 연주하는 이지혜(가야금), 이영섭(대금), 김복음(거문고) / 왼쪽부터
"대금, 가야금, 거문고를 위한 '꿈'"을 연주하는 이지혜(가야금), 이영섭(대금), 김복음(거문고) / 왼쪽부터김영조
다음 연주곡은 '대금, 가야금, 거문고를 위한 꿈'인데 초연이라고 했다. 세 악기의 어울림을 통하여 아름다운 꿈을 꾸고픈 바람을 담은 2006년 새 곡이라고 한다. 대금, 가야금에 거문고가 더하여 서정적인 그러면서 박진감 있고, 화려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연주되는 것은 '우리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다. 우리 민요를 주제로 굿거리, 엇모리, 동살풀이 장단의 변화와 변주의 기법을 활용하여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 악곡인데 이병욱의 기타와 윤주희의 해금 그리고 황경애의 타악으로 아름다움을 만든다.

사회자는 다음 곡을 설명하면서 '이병욱 퍼(for) 모차르트', '모차르트 퍼(for) 이병욱'이란 꾸밈말을 쓴다. 제목은 '아라리 퍼(for) 모차르트'이지만 모차르트의 주제를 우리 음악 양식의 아라리로 풀어낸 곡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한국음악에 어울림으로써 동서의 이념적,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 화합, 융화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곡으로 풀이한다. 25현 가야금의 좁지 않고 아름다운 선율이 나를 매료시킨다.


이어서 이병욱은 연주만이 아닌 걸쭉한 소리를 뽐낸다. 이병욱이 작곡한 '오 금강산'과 '검정고무신'을 자신의 기타, 이지혜의 가야금, 이영섭의 대금, 김복음의 거문고, 안성일의 타악을 반주로 소리꾼들이 무색할 정도로 선보인다. 원래 이 노래를 불렀던 사회자도 감탄하고 있다.

"우리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연주하는 이병욱(기타), 황경애(타악), 윤주희(해금) / 오른쪽부터
"우리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연주하는 이병욱(기타), 황경애(타악), 윤주희(해금) / 오른쪽부터김영조
"오 금강산", "검정고무신"을 노래하며, 연주하다(노래,기타:이병욱, 가야금:이지혜, 대금:이영섭, 거문고:김복음, 타악:안성일, 신디사이저:양승환)
"오 금강산", "검정고무신"을 노래하며, 연주하다(노래,기타:이병욱, 가야금:이지혜, 대금:이영섭, 거문고:김복음, 타악:안성일, 신디사이저:양승환)김영조
이제부터는 드럼과 색소폰이 함께한다. '한오백년 살리라'라는 곡을 국악기는 해금만 참여하고, 서양악기인 기타, 색소폰, 첼로, 드럼, 신디사이저가 포위했다. 하지만, 해금은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서양악기들과 기막힌 어울림을 자랑한다. 어찌 우리 악기가 이렇게 당당할 수가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환상의 어울림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계속되는 곡들도 김희현씨의 드럼이 빛을 발한다. 다음의 '한강아라리'엔 플루트가 하나 더해졌다. 고운 선율의 플루트와 첼로가 해금, 가야금과 하나가 된다. 그 누가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울릴 수가 없다고 했는가? 한강이 흐르듯 음악은 분단의 아픔을 치료하듯 한없이 흐른다.

마지막 곡은 시나위와 서양 재즈를 아울러 공통적인 형식미를 염두에 두고, 주제와 함께 즉흥적인 연주를 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연주자가 기량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드럼의 환상적인 연주가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신들린 듯 연주하는 김희현씨의 손이 전혀 보이지 않다. 여기에 장구의 어울림은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청중들은 제청을 외치고 또 하나의 음악을 받았다.

이날 연주회는 그들의 이름답게 '어울림'이었다.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어울림, 연주자와 청중의 어울림, 자연과 사람과 소리의 어울림인 것이다. 어울림이 어렵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고 있었다. 2006년의 봄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이병욱과 어울림의 감성은 가히 천상의 소리를 내고 있음이라 나는 단언한다.

신시나위를 연주하는 이병욱(기타), 이영섭(대금), 이지혜(가야금), 송병태(첼로), 안태건(섹소폰), 김준영(거문고), 윤주희(해금), 김희현(드럼), 안성일(타악), 양승환(신디사이저)
신시나위를 연주하는 이병욱(기타), 이영섭(대금), 이지혜(가야금), 송병태(첼로), 안태건(섹소폰), 김준영(거문고), 윤주희(해금), 김희현(드럼), 안성일(타악), 양승환(신디사이저)김영조
이번 연주회와 함께 '이병욱과 어울림'은 '이병욱의 음악산책'이란 음반을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 내놓았다. 이 음반 중 첫 장엔 '진도아리랑', '한오백년' 등의 민요와 '보리밭', '그리운 금강산' 따위의 가곡을 연주한 것이고, 둘째 장엔 토셀리의 '소야곡', '사랑의 기쁨', '그대를 사랑해' 등 외국 노래가 실려있다. 이병욱은 이 음반을 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친숙한 음악, 말고 밝은 생활음악으로 사랑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그동안 '어울림' 말고도 대금을 하는 아들 이영섭, 가야금을 하는 딸 이은기, 거문고를 하는 며느리 김복음, 노래와 장구, 춤을 하는 부인 황경애씨와 함께 가족실내악단 '둥지'를 꾸려 활동해왔다. 또 그는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창작 오페라 '솔뫼'를 작곡, 초연하고, 가톨릭 우리소리관현악단을 창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는 등 종교음악의 토착화에도 힘써왔다.

또 그는 백상예술상 음악상,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 한국방송 국악대상 작곡상, 대한민국 관악 작곡상 등을 받았으며, 현재 청주 서원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 한국음악의 산실인 '마리소리골'을 운영하고 있으며, 홍천군과 함께 악기박물관과 국악전문 테마관광지를 조성하고 있다.

"크로스오버도 우리 음악 고유성 살아 있어야"
[대담]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 이병욱 서원대 교수

▲ 대담을 하는 이병욱 교수
- 서양음악 전공자가 우리 음악을 하게 된 내력은?
"군악대 등에서 작곡과 편곡을 하면서 소재의 결핍 등으로 현대음악에 회의하게 되었다. 그러다 독일에 건너가 볼프강 림이란 스승을 만나게 되었는데 스승은 '한국엔 산조도 있는데 왜 서양 것만 모방하려고 하느냐? 자신의 길을 찾아라!'라는 조언을 주었다. 이에 충격을 받았고, 이때 만난 세계적인 한국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우리 음악을 찾는 길을 떠났다."

-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 이후 우리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을 해나갔다.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은 우리 음악의 선율과 서양의 대위양식, 화성과의 만남이다. 또 우리 음악의 단순성과 서양음악의 다양성이 하나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우리의 철학과 내면의 세계가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려운 점은 우리 음악의 음계에 서양음악을 넣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어쩌면 이런 음악은 동서의 기름과 물의 만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잊어서 안 될 것은 악기 개발에만 치중하면 우리 음악의 특성이 없어진다는 것과 우리 음악의 농음은 자연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우리 악기가 서양악기와 같이 연주하기에는 음폭이나 음량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지만 어제의 연주를 보니 괜한 기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동안 우리 악기와 우리 음악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서로 하나 되려는 노력을 하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해금이나 대금의 소리를 비올라나 플루트 소리와 비교해도 우리 악기가 전혀 위축되지 않음을 실감할 것이다. 오히려 전체 음악을 이끈다는 생각도 들 정도이다."

- 연주회의 마지막 곡 '신시나위'는 드럼의 재량에 의한 연주가 지나쳐 전체적인 분위기를 헤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지막 곡의 작곡의도가 연주자가 기량을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즉흥성에 있었다. 그래서 드럼 연주자에게 재량을 주었는데 신명이 나다 보니 길어진 듯하다. 다만, 청중들이 호응해주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아서 다행이다."

이병욱은 유명한 작곡가, 연주자라는 생각보다는 이웃집 아저씨였다. 그에게서 그렇게 포근하고, 사람 냄새가 났다. 그런 그의 성품이 어울림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와 대담을 하면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의 따뜻한 성품이 그대로 전이될 것이란 믿음을 가져 본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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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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