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만과 리뾰쉬까 그리고 차이김준희
어디로 여행을 가던지 간에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음식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싸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그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꽤 매력적인 장소일 수 있다. 양고기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여행객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중앙아시아를 떠나는 날, 난 오전에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라그만과 삼사, 차이를 먹었다. 이제 비쉬켁을 떠나면 중앙아시아를 떠나는 것이고 그러면 몇 달 동안 지겹게 들어왔던 러시아어도 못들을 테고, 중앙아시아의 음식도 못 먹게 된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먹어온 많은 음식들, 그중에서도 특히 라그만과 리뾰쉬까가 생각날 것만 같다. 어쩌면 난 이 음식이 먹고 싶어서 중앙아시아에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른다.
오후가 지나서 2일간 묵었던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 밖으로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떠오르는 얼굴들. 엉터리 여행자인 나를 도와주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수잔나, 카자흐스탄의 친구들 아스카와 아이굴 그리고 키르키즈스탄의 친구 에르킨.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친구들의 친절과 웃음 때문이다.
마나스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남은 돈을 모두 달러로 환전하고 나서 출국심사대를 통과했다. 공항의 직원은 내 얼굴과 여권을 보더니 비자에 출국도장을 찍어주었다. 내가 타는 비행기는 중국남방항공사의 비쉬켁-우루무치-베이징 항공편이다. 오늘 저녁에 비쉬켁을 떠나면 우루무치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낮 12시경에 베이징에 도착한다. 호텔숙박권을 포함한 이 항공편의 가격은 328달러다.
심사대를 통과해서 게이트 앞의 대기실로 가자 그곳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동안 들어오던 러시아어와 함께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홍콩영화를 통해서 익숙해진 중국어가 좀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중앙아시아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러시아어는 '앗 꾸다?'라는 말이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는 의미다. '까레야(한국)'라고 대답하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다시 '세베르니 까레야? 유즈니 까레야?'라고 되묻는다. '세베르니 까레야'는 북한, '유즈니 까레야'는 남한이다. 북한에서 배낭 메고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다보니까 나중에는 '세베르니 까레야!'라고 말하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고, 내 마음 한구석에는 북한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