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쑤신 학군조정... '평준화폐지' 또 고개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등록 2006.03.30 10:16수정 2006.03.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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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론이 모아졌다. 극소수 교육당국자를 빼고는 한결같이 "반대"를 외친다. 서울지역 고교 학군 조정 검토 소식에 대한 반응이다.

정파의 차이도, 이념의 차이도 없다.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이 똑같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열린우리당 의원 상당수도 "안 된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동국대학교에 학군 조정 연구를 의뢰했고, 교육부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에 학군 조정 여부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실현가능성은 낮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데 무슨 배짱으로 추진할 수 있겠는가.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예감하면서도 우려감을 떨칠 수 없다. 학군 조정이 우려스런 게 아니다. 그 다음이 우려스럽다. 절대 다수가 '반대'를 외치지만 대안은 다르다. 이게 문제다.

왜 경제문제에 교육문제를 끼워 넣느냐고 한다. 오히려 강남 집값과 전세값만 올릴 것이라고 예견한다. 교통대란을 어떻게 할 것이며, 강남 학부모의 반발은 또 어찌 풀 것이냐고 다그친다.

여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다. 절대 다수가 똑 같이 펼치는 반대 논리다. 하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란 질문을 접하면 입장이 갈린다. 2차 논란을 예고하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경우다.

<중앙> 슬그머니 평준화 폐지 주장


<중앙일보>는 "학군 조정보다는 평준화 정책을 수정해 각자가 선택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평준화 폐지 주장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학군 조정 얘기가 나오는 순간 따라 붙는 게 바로 이 주장이다. 그럴 만도 하다. 학군 조정론자는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강남 학군을 푸는 것이니까 평준화의 틀을 깨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식 논리다.


학군 조정 주장의 전제는 '강남 교육'에 대한 수요가 광범위해 강남 집 수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전제를 그대로 따르면 '선지원'하는 학생 역시 상당수에 달한다는 추론이 나온다. 고교 배정을 위해 '뺑뺑이'를 돌릴 때 서울 전역이 들썩거릴 정도라면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게 된다. 차라리 고교 입시로 푸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는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고 했다. 여권 내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봐도 이 비판은 성립한다. 평준화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엉뚱하게 평준화 제도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차라리 평준화 제도를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라면 '음흉한 프로'라는 말이라도 들을 텐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평준화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곳이 아직까지는 <중앙일보>에 한정돼 있다. 상당수 신문은 절충안을 내놓고 있다. 강남을 잡으려 하지 말고 강북의 교육여건을 끌어올리라는 주문이다.

<조선> "상향평준화" 제시... 실업고생의 상실감은 어쩌라구

당연한 지적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일보>는 "강북에 좋은 학교를 많이 세우고 지원을 늘려 교육환경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상향평준화 방법"을 제시했다. 실업고생 전체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마련하기로 한 4천억 원이면 "전주 상산고 같은 반듯한 자립형사립고를 매년 15개씩 만들 수 있고 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제외한 서울 전역의 인문고 157개를 10년 안에 자립고나 자립고 수준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는 각론도 내놨다.

4천억 원만 있으면 인문고 157개를 자립고 수준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는 계산법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아하지만 논외로 하자. 주목해야 할 건 따로 있다.

<조선일보>가 내놓은 대안엔 특성이 있다. 다른 신문이 '강북의 교육여건'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특정했다. 바로 공교육이다. 강북의 공교육 체제를 손대야 한다는 게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평준화 폐지라는 <중앙일보>의 대안과는 온도차가 있지만 어떤 방식이든 공교육 체제에 손을 대야 한다는 근본 취지에선 다를 바가 없다.

<조선일보>의 진단은 '강남 교육'이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기인한 바 크다는 교육·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렇기에 목동이나 중계동 지역의 아파트값 상승률이 다른 강북지역에 비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강남 못잖은 수준의 사교육 시장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다.

보려면 제대로 보자. 본질은 교육 여건이 아니라 교육 투자여건이다.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이 더 문제다. 현실은 이렇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공교육 체제를 손대자고 한다. 그럼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교육 투자여건의 격차가 공교육 여건 격차로 제도화돼 버린다. 그나마 '강남 8학군'과 '특목·자립고'로 한정됐던 '교육 특구'가 확대된다. 1대9의 비율을 보이던 교육 격차는 2대8 또는 3대7로 확대되고, 1에서 3으로 늘어난 '특별 학생'을 바라보는 '보통 학생'의 상실감도 그만큼 배가된다. 더구나 공교육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실업고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4천억 원의 장학금을 '특별 학생' 만드는 데 투입한다면 상실감은 더욱 커진다.

상황은 엉뚱하게 흐르고 있다. 극소수 교육당국자의 '입방정'으로 공교육 체제가 쑤셔진 벌집 꼴이 됐다. 아마추어라는 비판조차 아까울 정도의 '선무당 춤'을 춘 극소수 교육당국자들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이러고도 "된장 바르면 된다"고 말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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