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최종 목표는 누구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점점 야릇해지는 검찰의 김재록 수사

등록 2006.03.31 10:46수정 2006.03.3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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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인 김재록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로비의혹과 관련,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인 김재록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로비의혹과 관련,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연합뉴스 김상희
상황을 재구성해야 할 것 같다. <중앙일보>의 보도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현대기아차 비리에 대한 제보가 지난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기존 설명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확인했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보도했으니 오보 가능성을 살피는 건 실례다. 믿고 따라가 보자.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비리에 대한 제보가 이뤄진 시점은 지난해 9∼10월이다. 수도권의 한 지방검찰청 검사에게 글로비스의 회계장부 등 내부 자료가 건네졌다고 한다. 이후 한 달여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50억 원 가량이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 지난해 11월 대검 중수부로 보고됐고, 이때부터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맡았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 비리 단속반이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인수·합병과정을 추적하던 중 지난해에 김재록씨의 존재를 포착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이 사실을 근거로 현대기아차 비리 수사가 김씨 로비의혹 사건의 한 지류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검찰의 공식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애초부터 현대기아차가 수사의 본류였다는 해석이다.

당연한 해석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은 제2, 제3의 질문을 파생시킨다. 이런 것들이다.

▲ 검찰은 왜 현대기아차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도 6개월 가까이 묵혔다가 이제야 꺼내든 걸까?
▲ 수사 의지가 없었던 건가? 그래서 <한겨레>가 어제 보도한 대로 내부 제보자가 언론에 제보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검찰을 압박한 걸까?
▲ 아니면 때를 기다린 건가? 그렇다면 굳이 이 시점을 택한 이유가 뭘까? 시중에 도는 '설'처럼 정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걸까?


검찰의 칼 끝은 '어떤 비리'로 향하고 있을까?

파생 질문이 적잖다. 질문의 성격도 다르다. 그래서 정반대되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특정 결론을 도출할 만큼 근거가 충분하지도 않다. 지금 단계에선 상식적인 추론에 근거해 얼개를 짤 수 있을 뿐이다.


<중앙일보> 보도대로라면 검찰은 이미 현대기아차 회계장부를 입수해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50억 원 장부 누락 사실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수사가 이 단계까지 와있었다면 김씨와는 무관하게 현대기아차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유력한 물증을 뒤로 제쳐놓고 김씨와 현대기아차를 연결하는 데 몰두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1월 김씨를 체포했다가 풀어주기까지 했다. 자칫하면 내사 사실이 알려질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했다. 왜 그랬을까?

이 시점까지 검찰조차도 김씨와 현대기아차와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김씨를 1월에 체포해 현대기아차 비리를 캤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기까지 현대기아차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또, 김씨 구속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는 신촌 민자역사와 부천 쇼핑몰 대출알선 혐의로, 현대기아차와 관련된 게 아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검찰이 김씨와 현대기아차의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면 더더욱 현대기아차에 대한 수사를 별도로 진행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다시 나온다.

그래서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현대기아차의 '어떤 비리'에 주목하는 걸까? 가장 유력한 증거인 회계장부까지 뒷전으로 밀쳐놓고 김씨에게 공을 들인 이유도 '어떤 비리'를 입증하는 데 사활을 걸었기 때문 아닐까? 회계장부로는 모자란, 김씨의 진술을 확보해야만 하는 '어떤 비리'에 주목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묻는 이유가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현대기아차가 정부 경제시책에 말을 듣지 않아 '괘씸죄'에 걸렸고, 그래서 검찰(또는 그 윗선)이 '손보기'에 나선 것이라면 굳이 제보 내용을 6개월이나 묵혀가며 김씨를 엮을 필요가 없다. '50억 원 회계장부 누락' 사실 만으로도 적잖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은 구분한다.

'김재록'과 '현대기아차'는 통로, 종착점은 누군일까

주목해야 할 건 '왜'가 아니라 '무엇'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무엇'을 수사하는지를 알아야 '왜' 수사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검찰은 글로비스 이주은 사장의 구속영장에 이렇게 적었다. "글로비스는 2001년 12월부터 최근까지 397차례에 걸쳐 총 7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 혐의는 회계장부를 통해서도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그 돈의 용처다. 용처는 회계장부를 뒤진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비자금이 현금화 돼 사과박스에 담겼다면 배달꾼의 진술 외에는 달리 입증할 방법이 없다.

검찰은 수사대상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있다고 했다. 글로비스가 비자금을 조성한 기간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있다. 따라서 그 비자금을 받은 누군가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있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현대기아차와 그 누군가를 오가며 돈을 전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씨도, 현대기아차도 최종 표적은 아니다. 그들 역시 통로일 뿐이며 종착점은 따로 있다. 검찰이 1월에 김씨를 풀어준 뒤 그의 동향을 24시간 감시한 이유도 아직 베일에 가린 그 누군가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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