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뻗어있는 의혹들이지만 기둥은 하나다. 분식회계, 불공정 거래, 전근대적 소유구조 등등. 우리 재벌의 고질적인 문제가 옷만 갈아입었을 뿐이다.
이젠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을 살피자. 노 대통령의 기업 예찬 또한 화려하다.
▲ 해외를 나가 여러 기업의 활동을 보고 기업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유착구조는 대개 해소된 거 아닌가? 투명성은 많이 높아진 것 아닌가?
▲ 투명성이 높아지고 개별행위 규제를 하기 쉽고 개별행위의 위반사례가 좀 적어지면 원천봉쇄하는 부분(출자총액제한제·금융산업분리)은 좀 완화시켜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달 28일의 대한상공회의소 특강과 지난 1일의 경제5단체장 청와대 오찬에서 행한 노 대통령의 발언들이다.
속도위반 기업정책, 사고나기 쉽다
나눠 살폈으니 이제 묶어야겠는데 쉽지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재벌의 비리가 대통령의 예찬을 갉아먹고, 대통령의 예찬이 재벌 비리를 덮는다. 어찌 할 건가?
노 대통령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현대기아차 수사에 대해 "어떤 의도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게 정답이다. 앞서 갖가지 비리를 열거했지만 현재로선 확정되지 않은 의혹이다. 그래서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보는 대통령의 태도는 옳다.
지켜보고자 한다면 말도 자제하는 게 상규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판정을 내리고 더 나아가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착구조의 실체와 기업투명성 정도를 재측정해야 할 지도 모를 중대 사안이 수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판정을 내렸다. 더 나아가 방향도 제시했다.
이건 속도 위반이다. 그래서 사고 가능성이 크다. 단적인 예가 출총제다. 집권여당에 이어 정세균 산자부 장관까지 나서 출총제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말을 기점으로 손을 대겠다는 뜻을 정부와 여당이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김재록씨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구조조정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데 그에 앞서 정부는 출총제와는 무관하게 재벌의 공적자금 투입 기업 인수의 길을 열어줬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헝클어지기 쉽다. 매듭짓기는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정권 말기현상, 즉 개혁은 후퇴하고 기득권세력의 전진이 '스피드업'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노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들은 기업가"라고. 기업가의 특성이 이럴진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들에게 온기까지 선사하면 거칠 게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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