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전법무부장관은 5일 오후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자 출마선언을 했다. 강금실 전장관이 정동극장 앞에서 팬클럽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보라색의 향연이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정장, 구두, 스카프, 귀걸이, 심지어 눈 화장까지 보라색으로 통일했다.
강금실 예비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을 맡은 오영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혼합된 보라색은 강남과 강북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서울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강 예비후보는 기성 정치권을 향해 "품격을 상실한 채 거짓 공방 속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품격 높은 정치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라색을 내걸었다. 웬만한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색,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색이 바로 보라색이다.
강 예비후보 스스로 채색을 했으니 감상하자. 강 예비후보의 '보라색 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물을 게 있다. 강 예비후보는 '보라색 정치인'으로 적합한가?
강 예비후보의 보라색 이미지를 구성하는 '3원색'이 있다. 참여정부 초대 법무장관이 되자마자 앉아야 했던 '검사와의 대화' 자리,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국회 모습을 보며 읊조렸던 "코미디야 코미디, 호호호"란 대사, 그리고 장관 퇴임 후 한국 춤에 심취하며 정치와 거리를 뒀던 행보다.
'3원색'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색은 같은 계통이다. '기성 정치권과 거리두기'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때 묻지 않은 참신한 이미지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적'과 '홍'의 차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신비주의의 정치 행보와 '지지율 1위'
강 예비후보는 이 이미지를 '새로운 정치'란 슬로건으로 다듬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암초도 있다.
강 예비후보는 열린우리당의 속이 시커멓게 탈 때까지 뜸을 들였다. 지난달 말 사실상 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공식 선언 일정을 뒤로 미뤘다. 이런 행보 때문에 강 예비후보의 '신비주의'는 보라색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났고 여론의 관심은 '강금실'이 아니라 '강금실의 출마'에 쏠렸다. 신비주의에 게임의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했고 그 결과는 '지지율 1위'로 나타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기성 정치권 뺨치는 노회한 정치 행보일 수도 있다.
물론 전혀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출마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순간 경쟁력 극대화에 몰두하는 게 선거의 원리이자 사람의 심리다.
준비 부족의 결과일 수도 있다. 최종 결심이 늦어지고 그래서 서울시장 예비후보로서 비전을 제시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늦췄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강 예비후보는 시정 운영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비후보로서 말씀드릴 만한 준비가 많이 돼있지 않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설계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럼 더 늦춰야지 왜 지금 출마 선언을 하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오지만, 접자. 기성 정치권과의 차별성을 재는 하나의 지표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지표는 아니다.
변색할 것인가 탈색할 것인가
강 예비후보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시민 후보'를 부인했다. '열린우리당 후보'로서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저조한 지지율이 발목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당과 거리를 두는 '시민 후보' 전술을 펼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선거대책본부의 주요 자리를 열린우리당 인사가 채우고, 선거전에 들어가면 열린우리당의 기층 조직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 또 열린우리당에 배정된 '기호 1번'을 선사받을 것인데도, 열린우리당의 색깔을 빼는 게 과연 '원칙의 정치'이고 '새로운 정치'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여지를 줄였다. 그런 점에서 강 예비후보의 결정은 타당하고 현명하다.
하지만 여지를 줄였을 뿐 완전히 없앴다고 보긴 어렵다. 출마 선언 자리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인사는 몇몇 의원으로 제한됐다. 강 예비후보는 그 이유에 대해 "새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탈색은 않되 변색은 하겠다는 얘기다. 진보라를 연보라 정도로 바꾸는 변색 말이다.
강 예비후보가 실제로 '변색 행보'를 보인다면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정당 공천제가 책임 정치 구현의 한 방법이라면 그에 따르는 게 '원칙의 정치'다. 집권 여당의 후보로서 서울시정과 관련된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 이는 '새로운 정치' 이전에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의 정치'다.
'무사무탈의 안정관리자'
'3원색'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색이 새로운 이미지를 채색한다면 첫 번째 색은 개혁 이미지를 만들어낸 주요소다. 검찰조직의 기득권을 강변하는 검사들을 정면 돌파한 전공이 가져다 준 전리품은 적잖았다.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자신과의 대척점에 몰아넣고, '기득권 유지' 논리를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개혁성과 돌파력을 국민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검사와의 대화'의 주역은 강 예비후보가 아니라 노 대통령이었다. 강 예비후보는 조연으로서 '대화'의 한 구성원에 머물렀던 게 당시의 생중계 장면이다.
이런 모습은 '검사와의 대화'를 계기로 연착륙에 성공한 '법무장관 강금실'이 보여준 모습과도 상통한다. 검사와의 정면 대결에서 승리한 후라면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게 순리였을 법한데도 강 예비후보는 '안정 관리'의 길을 택했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갈등을 겪을 때면 반주를 곁들인 식사자리에서 '원만한 타협'을 이뤄내거나 검찰의 요구를 수용했다.
적절한 예가 있다. '법무장관 강금실'과 '법무장관 천정배'를 비교하면 대별점이 나온다. 천 장관의 경우 취임 초기 검찰총장 퇴진까지 감수하면서 '강정구 파동'을 정면 돌파했다. 검사장급 인사 때도 부실·편파 수사의 책임을 물어 자신의 인사안을 관철시켰고, 친재벌 수사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했다.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참여정부의 최대 치적이 검찰 권력을 손에서 놓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강 예비후보의 행적을 높게 평가하는 반면 천 장관을 "포퓰리즘적 언사로 검찰을 흔드는 정치 장관"으로 비판할 수도 있다. 정반대로 개혁의 효과와 실천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강 예비후보를 '무사무탈의 안정관리자'로, 천 장관은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 개혁집행자'로 평할 수도 있다.
'보라색 정치'의 실체는?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 환기하자. '법무장관 강금실'에 대한 평가를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에 대입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법무행정과 서울시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법무행정의 최대 고려사항이 '인권'과 '정치'라면 서울시정은 '민생'과 '자치'를 최우선 가치로 한다. 그래서 법무장관에게 요구하는 자질과 서울시장에게 요구하는 자질은 같을 수 없다.
'법무장관 강금실'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그것을 그대로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에 대입하는 건 곤란하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측면을 새롭게 살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강 예비후보는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새 인물'이다. 아울러 강 예비후보가 내건 '보라색 정치' 이미지도 아직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가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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