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자신만 믿고 있는 '출마의 이유'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그는 서울시장 경선 왜 나왔나

등록 2006.04.10 09:21수정 2006.04.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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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전 의원은 9일 오전 11시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오세훈 전 의원이 웃고 있다.
오세훈 전 의원은 9일 오전 11시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오세훈 전 의원이 웃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오세훈 전 의원의 아킬레스건은 '불출마 선언'이다.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1월의 일이다. "정치를 접겠다"고도 했다.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그랬던 그가 2년 3개월 만에 정계로 돌아왔다.

'강금실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던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러브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시선이 마냥 고울 리만은 없다. 같은 당의 김정훈 의원은 오 전 의원을 "당 밖에서 우아한 이미지만 가꿔오던 사람"이라며 "정계를 떠난 사람이 이제 와서 다시 정치판에 복귀하려고 기웃거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했다.

오 전 의원의 해명은 짧았다.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2년 3개월 전에는 5·6공 출신 정치인들의 정계은퇴를 압박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들이 단 한 번의 선거로 면죄부를 받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란다.

언론의 평가는 박하다. <한국일보>는 오 전 의원의 해명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태도"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은 불출마 선언이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의 이벤트"라는 정치권 일각의 지적을 전했다.

접었던 '욕심' 다시 꺼냈다, 그 남자의 달라진 사정

이런 지적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오 전 의원은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책적인 점에서는 충분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정치에서 물러난 후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삼아 치열한 연구를 해왔으며 지난해 8월 펴낸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책은 그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정치를 접겠다"고 한 사람이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삼아 치열한 연구"를 했어야 할 이유가 뭘까? 오 전 의원은 "작년 말까지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면서 (서울) 시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욕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오 전 의원은 그러면서도 "아니다"고 했다. 오 전 의원은 지난해 말 외국에 나가면서 사실상 꿈을 접었다며 "마음을 접은 4~5개월이 괴로웠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불출마 선언 후 상당 기간 동안 서울시장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4~5개월 전부터 꿈을 접었다가 사정이 달라져 출마를 선언하게 됐다는 얘기다.

포인트는 '달라진 사정'이다. 강금실 전 장관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앞서면서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들이 면죄부를 받는" 상황이 가시화돼 어쩔 수 없이 출마하게 됐다는 게 오 전 의원의 설득 포인트다.

이 포인트는 2년 3개월 전의 불출마 선언의 이미지, 즉 '살신성인'의 이미지를 부활시킨다. 차떼기로 위기에 놓인 당을 구하기 위해서는 5·6공에 몸담았던 정치선배들의 정계은퇴를 이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먼저 자신을 던져야 했다는 '살신성인'의 이미지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오명을 감수하겠다는 태도에서 부활한다.

운좋으면 당선, 여차하면 백의종군... 밑질 게 없다

그 뿐인가. 여차하면 백의종군을 할 수도 있다.

오 전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 오는 25일이면 경선 결과가 나온다. 비록 자신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곤 해도 경선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책임당원과 대의원이 전체 선거인단의 50%를 점하는 당내 경선은 바람보다 조직의 힘이 더 크게 좌우한다. 몇 달 전부터 조직을 다져온 다른 당내 경선주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 일부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의 지역구는 서울이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다.

지도부가 나서서 몰아주기를 해주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큰둥하다. 경선일자를 늦춰달라는 오 전 의원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겨우 이틀 인심을 썼을 뿐이다.

그래서 오 전 의원은 경선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나섰다. 왜? 밑질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절체절명의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자신이 나서서 막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백의종군이라도 할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희생에 의해 이뤄진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더라도 다른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시키겠다는 태도는 2년 3개월 전의 불출마 선언과 닮아 있다. 금배지를 떼는 것과, 흰 옷을 입는 차이일 뿐 '몸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오 전 의원은 밑질 게 전혀 없다. 용케 당내경선을 통과하고 감격스럽게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불출마 선언을 뒤집은 '식언 정치'는 일거에 해소되고 오히려 정치적 위상이 뛴다. 반면 당내 경선에 실패하더라도 정계복귀는 자연스레 이뤄질 뿐 아니라 '희생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배가된다. 오 전 의원이 펴낸 책 제목처럼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계산이다.

정계 복귀도 그에게는 '살신성인'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 전 의원의 계산이다. 굳이 국민이 이런 계산을 따라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점검이 필요하다.

오 전 의원의 계산은 전적으로 '달라진 사정'에서 출발한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질 지도 모를 위기에 빠졌다는 상황 말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는 강금실 대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전을 박빙의 승부로 예상하고 있다. 지지율을 연령대별 투표율에 대입한 예상 득표율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들과 강금실 전 장관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고 평했다. 오 전 의원에 손을 내밀어야 할 만큼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오 전 의원의 출마의 변, 즉 자기가 꼭 출마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만이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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