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재선거 유세에 나선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대구에 도착하자 기다리던 지지자들이 '이회창'을 연호하며 환영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말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연 말문이라 그런지 장황하다. 대선구도·정당구조·참여정부 성격·언론문제 등 주요 핫이슈를 두루 언급했다.
상당수 언론의 촉수는 '왜'에 맞춰져 있다. 왜 입을 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에 대한 관심사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전 총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몸이 부서지더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대선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겠다고 시사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한 말이다.
여기에 "대선에서는 정당과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들, 그리고 아직 정치세력화되지는 않았어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뛸 것"이라고 예견까지 했으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전 총재는 "정치를 떠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과잉 해석은 하지 말란 뜻이다. 그럴까? 그럼 이 말은 왜 했을까?
"주님, 저는 주님의 활입니다. 내버려 썩게 하지 마시고 당기소서. 그러나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부러질까 두렵습니다. 아니 주님, 세게 당기소서. 당신이 원하신다면 부러져도 좋습니다."
"주님"을 "유권자"로 바꿔 해석하면 어떨까? 그럼 해석은 명징해지지만 어차피 지금은 이 전 총재가 정치적 선택을 할 때가 아니다. 기다리며 지켜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 원조보수는 한나라당에게 이것을 바란다
다른 점을 짚자. 이른바 '대한민국 원조 보수'의 시각이다.
이 전 총재는 2007년 대선을 "친북좌파세력 대 비좌파세력의 대결"로 규정한 뒤 후자의 연대를 촉구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류근일·조갑제 씨의 말과 흡사하다.
류근일씨는 지난해 9월 자신의 기명칼럼에서 대선을 "대한민국을 김정일 입맛대로 바꿀 것이냐, 말 것이냐의 한반도 최후의 결전"으로 규정하면서 '국민통합 구국연합' 구축을 제창한 바 있다.
조갑제씨는 지난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을 삼키려 드는 김정일 및 친북좌익과 싸우지 않으려 한다"며 두 번의 대선에서 진 것은 좌우 이념대결을 기피함으로써 다수인 보수층을 각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원조 보수'의 '구국의 열정'을 이 자리에서 따질 이유는 없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기에 내성도 생길만큼 생겼고 반박논리도 도처에서 제기한 바 있다. 그냥 그들의 '신념'이겠거니 하자.
관심사는 열정이 행동으로 승화되는 경우다. 열정은 비분강개를 낳고 비분강개는 결사투쟁을 낳는 법이다. '원조 보수'가 그런 열정을 갖고 있다면 2007년 대선을 그냥 흘릴 리 없다. 어떻게든 행동에 나설 것이다.
이 전 총재의 예견을 빌리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들"이 "아직 정치세력화 되지는 않았어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을 조직해 "정당", 즉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양상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구태의 재림, 구세력의 귀환... 시간은 없다
한나라당으로선 크나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원조 보수'가 요구하는 대북노선은 '반(反) 김정일'이며 그 방법은 '상호주의'다. 이는 한나라당이 이 전 총재 퇴장 이후 전략적 상호주의를 폐기하고 공존정책을 채택한 것과 배치된다.
다시 말해 '원조 보수'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합리적 보수'의 길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그 결과는 외연 확대정책의 포기다. 그렇다고 '원조 보수'와 선을 긋기도 힘들다. 그랬다가는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에 맞서기도 전에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다.
한나라당의 최대 문제는 과거의 '덫'에서 허우적대는 점이다. 과거의 '차떼기' 이미지를 지우기도 전에 공천 비리가 터졌다. 구태의 재림이다. 과거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원조 보수'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색깔을 분명히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구세력의 귀환이다.
본질은 '앙시앙 레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의 길이 있고, 프러시아의 길이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 고민을 더 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많지 않다. 저 앞에서 이정표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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