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폭로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뉴스가이드] 확인되지 않은 폭로는 부메랑 돼 돌아올 뿐

등록 2006.04.17 09:26수정 2006.04.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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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사룡리 한 호숫가에 위치한 별장 4채가 열린우리당에서 주장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별장 파티'와 관련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사룡리 한 호숫가에 위치한 별장 4채가 열린우리당에서 주장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별장 파티'와 관련 논란이 되고 있다.연합뉴스 김도윤

'한 건' 올렸다고 생각했나 보다. 김한길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경악할만한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예고한 걸 보면 대량살상무기급은 된다고 본 모양이다. 하지만 발사 이후에도 '대량살상무기'의 기폭장치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어제(16일) 공개한 '별장 파티'는 얼핏 봐선 구색이 맞는다. '지방권력 심판론'에 올인하던 차에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후속편이 걸려들었다. '황제 테니스'를 주선한 선병석 전 서울시테니스협회장과 이 시장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잡지 못해 확전을 못하고 있다가 고급별장에서 성악과 여성 강사까지 참석시켜 1박2일로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을 접했다.

'황제 테니스'가 '특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면, 고급별장-여성 강사-파티는 '반서민'과 '부도덕'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 시장과 선 전 회장의 특수관계를 기정사실화하면 '부패' 이미지도 확산시킬 수 있다. 잘만 하면 공천 비리로 부패 이미지를 뒤집어쓴 한나라당에 마무리 펀치를 날릴 수 있다. 오세훈 예비후보 외곽 때리기 효과까지 거둘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강펀치?

하지만 실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선 전 회장과 서울시는 고급별장이 아니라 전원주택이고, 여성 강사가 아니라 여성 동호회원이며, 파티가 아니라 식사였다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선 전 회장의 이름도 몰랐다"던 이 시장이 어떻게 고급별장에서 1박2일간 파티를 벌일 수 있었는지, 또 교회 장로로서 주일을 꼭 챙기던 이 시장이 무슨 연유로 예배까지 빼먹으며 선 전 회장 등과 함께 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며, 따라서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이런 '열변'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확정할 수는 없다. 의혹 근거로 제시한 것들은 하나같이 정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넓게 해석해도 '그럴지도 모른다'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싸늘하다. 오늘자 조간 중에 '별장 파티'를 1면에 올린 신문은 거의 없다. <국민일보>와 <동아일보>가 1면에 올렸지만 제목은 이것이다. "또 무책임 폭로전인가", "고발된 사안… 확인 안 된 설… 여당에서도 '너무했다' 비판".

관련 기사를 뒤로 돌린 신문들의 논조도 비슷하다. 그 어느 신문보다 '황제 테니스'에 비판적이었던 <한겨레>조차 이렇게 평했다. "경악할 만한 비리라더니…". 말줄임표에 들어갈 말이 뭔지는 분명하다. "도대체 이게 뭐냐"는 힐난이다.


<한겨레>는 '여성' 문제를 제기해 '부적절한' 술자리가 벌어졌음을 암시한 것과는 달리 모임의 구체적 참석자나 현장 상황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 했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선 '김 원내대표가 너무 성급하게 기대 수준을 높여놓은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17일자 조간 중에 '별장 파티'를 1면에 올린 신문은 거의 없다. 그나마 1면에 올린 <동아>는 '고발된 사안, 확인 안된 설'을 제목으로 뽑아 여당의 무책임한 폭로전을 비판했다.
17일자 조간 중에 '별장 파티'를 1면에 올린 신문은 거의 없다. 그나마 1면에 올린 <동아>는 '고발된 사안, 확인 안된 설'을 제목으로 뽑아 여당의 무책임한 폭로전을 비판했다.

자승자박?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좀 더 지켜보는 게 순리겠지만 최소한 오늘 오전까지만 놓고 보면 열린우리당은 자승자박의 우를 범한 듯하다.

'개봉 박두' 예고 멘트까지 날리며 홍보전을 벌인 것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 태산명동에 서일필 꼴을 연출했기에 뒷머리 긁적이게 됐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나을 텐데 벌써부터 일부 언론은 부실·저질 폭로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 뿐인가. 열린우리당의 "경악할 만한" 폭로 덕에 한나라당의 공천 비리 문제는 쏙 들어갔다. 오늘자 조간에서 공천비리 관련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공천 헌금 수수 의원과 그 부인들의 출국금지 및 소환 예정 기사가 전부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한나라당 스스로 5~6건의 공천 비리가 더 있다고 밝힌 마당이니 '상황 종결'로 볼 순 없지만 한나라당에 숨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준 건 틀림없다.

곤혹스럽게 됐다. 한나라당이 공천 비리로 '중앙정부 심판론'의 기를 자진해서 빼버렸다면, 열린우리당은 "경악할 만한" 폭로 탓에 '지방권력 심판론'의 설득력을 스스로 깎아버렸다.

이렇게 되면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는 약화된다. 지방선거의 상징인 서울시장 선거가 가뜩이나 인물 대결로 치닫는 와중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기에 이후의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인물 대결 양상이 심화되면 될수록 상대편 흠집 내고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기승을 부린다.

강금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처지가 이상하게 됐다. 강 예비후보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이 선언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강 예비후보가 몸을 의탁한 당의 지도부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했다.

열린우리당과 거리를 두는 선거전략을 꾀하다가 정당 책임제 원칙에 걸려 엉거주춤하던 강 예비후보다. 이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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