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요리책을? 폭탄주 제조법 아니고?"

[에피소드]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를 내면서

등록 2006.04.21 14:54수정 2006.04.24 17:3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겉그림. ⓒ 부키

얼마 전 요리책을 한 권 냈습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내 멋대로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 즐기자'는 내용을 담은 '요리 비전문가'의 엉뚱한 요리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제목도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입니다. 출판 제안을 받은 것이 2004년 2월이었고 올해 2월이 다 갈 무렵 책이 출간되었으니 만 2년, 햇수로는 3년이 걸려 책 하나를 낸 셈입니다.

한 달 반 전, 홍콩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이삿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한국에서 배달되어 온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한동안 못 만났던 자식을 만나 쓰다듬어 주듯 표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루만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쁜 이삿짐 정리도 뒤로한 채 혼자 조용히 지난 2년간 책을 준비했던 과정들을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10년만의 무더위, 요리책 위해 '피땀' 흘리다

a

다 끓여서 익힌 생선매운탕에 저렇게 파란 고명이 오른 것을 본 일이 있으십니까? 사진 때문에 매운탕을 다 끓인 후 고명을 얹은 것이지요. 파란색 야채가 김 때문에 숨이 죽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요. ⓒ 이효연

a

ⓒ 이효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피땀 흘린 아픈 추억'입니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홍콩에 1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왔었던 재작년 여름, 찌는 듯한 폭염의 한가운데에서 1차 원고 마감을 앞두고 날이면 날마다 수십 가지의 요리를 하느라 불 옆에서 비지땀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에어컨이 쉼 없이 돌아가고 바로 옆에서는 프라이팬에 불이 붙을 정도로 강한 화력의 가스불이 열기를 내뿜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여름 내내 연출되었던 것이죠. 상상이 되시나요? 거의 탈진할 듯 너무 힘이 들 때에는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짓을 한다고 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이지 괴롭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었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무릎이 다 까져 피가 날 정도로 바닥을 기어 다녀야만 했던 일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직접 요리 사진을 찍었지만 아마추어인지라 짧은 시간에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 가장 좋은 구도를 잡는다고 생각하며 행한 방법이 요리를 식탁에 올려놓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수십, 수 백 장을 찍다보니 나중에는 무릎이 까져 옷에 피가 스미는 줄도 모르고 셔터를 눌러댄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아픈 추억'이었습니다.

엄마 생각에 요리하며 눈물을 쏟다

a

스터프드 에그와 참치 초밥 같은 저렴하면서 색감이 화려한 요리들이 제가 좋아하는 요리들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오고 맛도 가격도 부담없으니까요 ⓒ 이효연

두 번째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추억'입니다. 옆에서 누가 보았더라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도마 앞에서 요리를 하다가 또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도 수시로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 생각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엄마가 돌아가셨나보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 엄마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도 엄마가 늘 해주셨던 무말랭이며 생선구이 같은 반찬들에 대한 원고를 쓰고 또 제 손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다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어려서는, 그리고 무심히 먹을 때는 몰랐던 '엄마의 사랑과 수고'가 새삼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을까요? '엄마는 가족을 위해 이 반찬을 만드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반찬투정을 하며 오기로 유독 이 반찬만 도시락에 남겨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하는 따위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 때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요리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고 사랑이 담긴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눈을 뜬 시간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다

a

'오이배를 탄 호두'라고나 할까요?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작업입니다.(왼쪽), 오이로 고임을 한 덕분에 호두알이 잘 보이지요.(오른쪽) ⓒ 이효연

세 번째는 좀 '개똥철학'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요,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쁘게 꾸며 담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란 깨우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호두죽을 만들던 날, 죽 위에 호두 반 알씩이 가지런히 올라가야 음식의 식감도 살고 사진도 잘 나올 텐데 이 호두알이 워낙 무거워서 죽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것이었어요. 할 수 없이 방책을 마련한 것이 죽 아래에 오이 동강을 잘라 고임을 하고 호두알을 올린 후 다시 죽을 부어서 오이를 가리는 '공사'를 하는 것이었지요.

또 된장찌개의 진정한 맛은 호박이며 조갯살을 푹 끓여 우러나오는 맛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곤죽이 되어서 도저히 요리책용 사진으로 쓸 수가 없지요. 그래서 파릇한 호박이과 입 딱 벌어진 조개 안에 통통한 살을 보이는 조갯살은 슬쩍 익혀 찌개에 얹어내는 '장난'을 쳐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록 뭉그러진 호박과 곤죽이 된 된장찌개일지라도 그 맛은 기막히듯, '세상에서 꾸며지지 않은 볼품없는 성근 모양새의 것이라도 그 안의 참된 맛과 가치가 있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맘 편하게 만들고, 즐겁게 먹자!

a

집안에서 키우는 관상목의 이파리를 뜯어서 소품으로 활용했습니다. ⓒ 이효연

이런 추억과 더불어 만들어진 제 요리책의 핵심은 '즐겁게 요리하고 즐겁게 먹자'입니다. 쉽고, 편하고, 즐겁게! 너무 격식에 구애받지 말고 편하게 즐기면서 정 '그 맛'이 안 나면 아주 가끔은 조미료도 좀 쳐 가면서 맘 편하게 만들고 즐겁게 먹고 살자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지요.

전문 요리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만든 책이라서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로 인해 요리하기가 겁나고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친구 같은 요리책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도 아니요, 요리학원 근처에는 가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낸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책과 관련한 주변 사람들의 인사도 아주 묘합니다.

"책 냈다면서? 축하한다. 잘 팔려?"와 같은 '상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도대체 네가 요리책을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폭탄주 제조 비법을 담은 책이라면 몰라도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나운서일 하다가 때려 치고 나와서 요리책을 다 쓰고, 정말 '멋대로 인생'인가 봐요. 나중에 '멋대로 폭탄주'나 한 잔 만들어 드릴게요."

요리 사진을 '잘' 찍는 요령 몇 가지

▲ 같은 요리지만 찍는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첫 번째), 자연광을 이용해 찍은 갈치조림 사진은 마치 물엿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고 촉촉한 느낌이 살아있습니다(두번째).
ⓒ이효연

사진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감히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럽습니다만, 때로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보가 초보에게 설명하는 요령이 더 쉽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요. 책을 만들면서 터득한 몇 가지 기초 요령을 간추려 봤습니다.

1.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할 것
똑같은 요리라도 자연광을 이용해서 찍은 것과 실내에서 조명을 켜고 찍은 것과는 자연스러움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특히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형광등을 켜고 요리 사진을 찍으면 절대 요리가 가진 색감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가 없습니다. 홍콩에 가기 전에 살았던 집의 채광조건이 상당히 안 좋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의 반 이상을 버리고 홍콩에서 다시 찍은 사진들을 책에 넣기도 했습니다.

2. 눈높이 사진을 찍자
가끔 요리 사이트에 올려진 요리 사진들 중에는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것들이 눈에 띕니다. 대개 초보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많이 찍더군요. 저도 몇 년 전 요리 사진을 처음 찍을 때에는 일단 식탁의자부터 찾아 밟고 올라가곤 했으니까요. 위에서 찍으면 둥그런 접시와 그 안에 담긴 요리 전체가 다 표현되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요리의 느낌이라든지 특징이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식탁에 음식을 놓고 무릎걸음을 걸으며 그릇에 음식이 담긴 정도 부분에 시선을 맞추어 사진을 찍으면 실패할 확률이 적습니다. 그릇에 담긴 요리 전체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3. 절제의 미덕을 지키자
내가 만든 요리의 사진을 찍다보면 보다 화려하게 보이고 싶다는 욕심에 이것저것 색스러운 고명 따위를 잔뜩 올리게 됩니다. 또 카레나 샐러드, 스파게티 같이 소스가 곁들여지는 요리의 경우, 소스를 철퍼덕 부은 다음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요리의 포인트가 살려지지도 않을뿐더러 애써 만든 음식의 식감이 떨어져 보이는 낭패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고명은 한가지나 두 가지 정도로 단순하게 포인트만 주는 식으로 올려 주요리에 악센트를 주는 용도로 사용되도록 최대한 쓰임을 절제하는 것이 좋고요. 소스의 경우는 국수나 밥 등이 약간 보일 수 있도록 살짝만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샐러드는 먼저 소스를 살짝 뿌린 후 그 위에 파슬리라든지 방울토마토 같은 색감이 화려한 재료를 얹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3. 적절한 소품을 이용한다
집 안팎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요리 사진에 좋은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중국요리 사진의 배경으로 흔히 쓰이는 빨간색 매트가 없다면 등산용 점퍼를 벗어 접시 아래에 깔고 찍어도 되고요. 싱그러운 느낌을 살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화초이파리를 뜯어다가 쓰면 됩니다. 반드시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보면 분명 음식을 돋보이게 할 소재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4. 요리는 아기 다루듯이 다뤄야
다 만들어진 요리를 접시에 담는 순간 사진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습니다. 요리의 순서상 재료의 색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맨 나중에 넣는 재료들이 있습니다. 가령 브로콜리라든지 파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하지만 접시에 담다 보면 냄비 윗부분에 있는 그런 재료들이 가장 아래쪽에 깔려 담기기 쉽습니다.

냄비를 들이붓듯 접시에 담으면 냄비 아래쪽에 가라앉은 지저분한 양념찌꺼기들이 접시의 맨 윗부분에 담기기 때문에 요리의 맛과 모양을 살려 사진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국자나 수저로 살살 퍼 담으면서 요리의 주재료가 접시의 가장 윗부분에 오도록 조심스럽게 요리를 다뤄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값싼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면서도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들어 부쩍 저렴하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 메뉴를 찾는데 열심이 되어가고 있지요.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

덧붙이는 글 값싼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면서도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들어 부쩍 저렴하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 메뉴를 찾는데 열심이 되어가고 있지요.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3. 3 해외로 가는 제조업체들... 세계적 한국기업의 뼈아픈 지적
  4. 4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5. 5 "모든 권력이 김건희로부터? 엉망진창 대한민국 바로잡을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