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30회

등록 2006.05.15 07:57수정 2006.05.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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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규칙은 생사를 가를 때까지 하는 것이 아닌 듯 보였다. 매우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절정고수의 대결에 있어 승부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단 한 순간만 삐끗해도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리만큼 규칙을 어떻게 정하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대는 그들이 설치하는 것이오?”

“저쪽이 주인이니 당연히 저쪽이 준비하는 게 당연하오.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다만 판정은 양쪽에서 참관하는 분 중에 세 분씩을 선발해 참관인으로 모시고, 뜻밖에도 섭장천 노선배를 참관인으로 모셔 모두 일곱 분으로 하자는 의견이었소.”


세 명씩이라면 그 승부를 판정하는데 팽팽히 맞설 수 있다. 미묘한 상황이나 찰나간에 결정되는 것이리만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쪽에 유리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섭장천을 넣어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의외의 제안이었다.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겠지만 아마 섭장천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불공평한 판정을 내리지 않을 인물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었다.

“대에 무슨 장난을 쳐 놓았을지 모를 일이로군.”

불쑥 동정채(洞庭寨)의 채주인 철부왕(鐵斧王) 나정강(羅晸康)이 뇌까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두들 한편으로는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섭장천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하겠지. 하지만 그리 심한 장난은 치지 않을 것이야.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이니까.....”

“담맹주가 나선다고 하니까 아주 흡족해 하더이다. 바라던 바였다고도 하고.....”


모용화궁이 걱정스런 어조로 말을 맺었다. 공식화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쩌면 자신의 조카일지 모르는 방백린과의 만남은 그에게 매우 껄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했다는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자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없나?”


모용화궁과 같이 다녀왔으면서도 지금껏 잠자코 있던 구양휘가 불쑥 담천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엇을 말이오?”

“상대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은 해두었네. 방백린이란 자는 몹시 실망하더군.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기에 내가 나서보고 싶다고 했네.”

구양휘는 언제나 보여주던 장난기를 걷고는 진중한 표정이었다. 또 그 엉뚱한 승부욕이 작용했던 것일까? 강한 자라면 일단 붙어보고 싶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승부욕은 구양휘가 가진 불치의 고질병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방백린이 강한 인물이라는 반증도 될 것이었다.

“형님....! 이 문제는...”

팽악 역시 장난기를 걷어 버리고 구양휘를 말렸다. 구양휘가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구양휘 개인의 문제로 끝날 것이 아니다. 그 불치의 고질병이 도져 충동적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내 모든 것을 걸고 붙어보고 싶다.”

구양휘는 말리려는 팽악의 말을 무시하고 담천의와 무림선배들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그의 성격을 아는 담천의는 나직하게 한숨을 불어내면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형님이 나선다면 아마 소제보다 이길 확률이 높아질 것이오. 허나 이번만큼은 형님께 양보해 드릴 수 없소. 소제는 그와 그의 부친에게 받아야 할 빚이 있소.”

어차피 그 빚은 혈채(血債)였다. 부모님과 담가장을 피로 물들인 그 빚. 능력이 부족해 혈채를 받아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기회마저 다른 이에게 양보할 마음은 없다. 담천의의 표정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구양휘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랴! 그는 어색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핫.... 이 우형이 괜한 소릴 했구나. 중요한 승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네의 심신을 어지럽혔는지 모르겠군. 빈 공간을 마련된 것 같으니 가서 준비해라.”

구양휘는 담천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시선을 좌중으로 돌렸다.

“광도. 네가 형제들과 함께 호법 좀 서 주고.....”

“알겠소.”

광도가 대답하며 담천의에게 눈짓을 던졌다. 어서 일어나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뜻이다. 결전에 앞서 운기조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담천의가 일어나자 혜청과 팽악, 그리고 남궁산산이 조용하게 일어나 광도를 따랐다. 담천의 역시 중대한 승부를 앞두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좌중을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좌중 사이를 빠져나갔다. 섭장천이 담천의에게 무어라 하려 하는 듯 했지만 청송자가 도호를 외우며 입을 여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소. 참관하실 분들과 특히 참관인이 되실 분들을 선출해야 될 것이오.”

그 말에 좌중의 많은 인물들 얼굴에는 아쉬움이 역력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무인이었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승부이기도 했지만 무인으로서 이러한 고수들의 승부를 보기란 일생을 통해 한 번 볼까 말까한 일이다.

하지만 참관할 수 있는 인원이 고작 스무 명 이내라니..... 철부왕 나정강이 또 다시 볼 멘 소리를 해댔다.

“빌어먹을..... 그 자식들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 아니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 없지 않소?”

나정강은 동정채의 채주로 정파의 인물들과는 다르다. 일단 상대가 불순한 마음을 먹고 있다는 전제하에 생각한다. 더구나 나정강 스스로도 참관할 수 있는 스무 명 안에 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섭장천이 힐끗 나정강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생각하는 것이 그 정도다. 만약 흉계를 꾸미려 했다면 방백린은 승부를 하자고 제의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백린은 최대한 자신들의 전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려 하고 있다. 천마곡 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들의 계획에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는 않소. 연무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최대 백여 명 정도라 했소. 참관인원이 많아지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할 것 같아 이십 명으로 제한한 것이오.”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함이다. 모용화궁이 마지못한 듯 입을 열어 이십 명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 그 내막을 설명했다. 좌중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나정강이 계면쩍은 듯 시선을 아래로 깔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야 뭐......”

“참관할 수 있는 분들은 두 가지 요건으로 선발하겠소.”

나정강이 꼬리를 말자 청송자가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시기에 어물거리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불만의 여지를 없애는 길이다.

“하나는 일단 어떠한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니 그것에 대처할 수 있도록 연륜과 무공수위를 기준으로 삼아 선출하겠소. 또 하나는 그 간 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신 분을 우선하는 것이오.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 계신 분은 말씀해 주시오.”

당연한 기준이었다. 일단은 무공이 고강해야 한다. 싸워보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아느냐고 따질만한 상황도 아니다. 더구나 맹에 공헌을 했다는 조건은 다분히 몽화를 의식한 기준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의도를 가진 구효기를 대신해 맹의 두뇌 역할을 했던 여자다. 그녀라면 만약의 사태에서도 대처할 방도를 찾아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선발 기준은 간단했고, 이에 따른 선발도 어렵지 않았다. 승부를 인증하는 참관인 세 사람도 수월하게 결정되었다. 청송자와 독고문, 구양휘였고, 저들이 지목한 섭장천은 예외였다. 또한 장철궁과 백결, 등자후는 독자적으로 참석할 뜻을 비쳤고, 그 덕에 다행스럽게 나정강이 낄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5월 말경이면 단장기 연재를 마치게 될 듯 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분과 조촐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단장기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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