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회

첫 만남

등록 2006.05.15 17:02수정 2006.05.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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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수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뭔가. 보좌관도 없고 기자도 없고...... 단 둘이서 세 시간 동안이나 얘기를 하란 말인가?’


남현수의 찌푸린 표정과는 달리 마르둑은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전에 못 다한 얘기를 해보지요. 어디까지 했었지요? 아, 제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남 박사님이 설명을 드리겠다고 했지요.”

남현수는 열개의 손가락을 서로 맞물려 깍지 친 채 무릎에 올려놓고서는 차분히 말했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전에 좀 물어보지요.”

“아! 여기에 이렇게 부른 이유를 묻고 싶으신 것이겠죠? 간단합니다.”


마르둑은 남현수를 흉내 내어 여덟 개의 손가락을 맞물려 깍지 친 채 조금은 어색한 동작으로 무릎에 올려놓았다.

“남박사님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궁금 해서지요. 저희는 사실 남박사님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굳이 속이거나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었기에 박사님이 모르는 부분을 덧붙여 얘기해 주기 위해 여기에 모신 겁니다.”


남현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정부기관과 이 외계인이 짜고선 자칫하면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리기 위해 날 없애려고......’

“남 박사님. 혹시 흉한 음모가 숨어 있을까봐 불안해하시는 겁니까? 만약에 어떤 수작을 부릴 작정이었다면 이곳저곳에 소문이 나도록 하고서는 남박사님을 여기까지 부르지는 않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현수는 마르둑이 자신을 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알면 뭘 안다고 이러는 것이냐는 투로군. 그래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남현수는 천천히 자신이 가져온 자료집을 펼쳐 들었다.

“전 아프리카에서 재미있는 화석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 보았지요. 그리고 검출된 것은 다량의 질산칼륨입니다. 즉, 그 7만 년 전의 인류는 화약에 의하여 해를 입은 것입니다. 원시적인 타제석기가 다였던 그 당시에 과연 누가 화약을 사용한 것일까요? 재미있는 건 하쉬행성의 외계인들이 7만 년 전에 지구를 방문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너무나 억측이 아닐까요? 낮은 확률이지만 자연적으로 생성된 화약에 불꽃이 튀어 상처를 입은 것일 수도 있고 그 질산칼륨이 검출된 원인이 화약이 아닌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요.”

마르둑의 지적에 남현수는 굳은 표정에서 한결 더 여유를 되찾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 화석을 찾은 주변을 샅샅이 탐색해 봤습니다. 그리고 역시 화약에 의해 시커멓게 탄 뼈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7만년이란 시간은 말입니다......”

남현수는 앞에 놓은 커피 잔을 집어 한 모금을 홀짝거리며 마르둑의 태도를 살폈다. 마르둑은 진지하게 남현수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자유전학적인 측면에서 인류의 계통도를 따라가다 보면 7만 년 전에 절멸의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하쉬 외계인의 방문과 인류절멸의 위기를 맞은 때가 겹친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전 이런 측면에서 좀 더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만약 7만 년 전에 질병이나 지구 환경의 급변이 있었다면 제 추정이 틀렸겠지요. 7만 년 전의 지구는 현대와 비교해서 그리 안락한 환경은 아니었습니다만 유래 없이 혹독한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7만 년 전에 멸종 위기를 맞은 다른 생물은...... 좀 더 찾아 볼 생물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없었습니다. 7만 년 전 인류의 화석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사를 해보니 특이한 질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뭔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죠.”

마르둑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성분을 알 수 없는 파란색 음료를 집어 들어 천천히 마셨다.

“지구의 기술은 얼마 안 되는 화석으로 7만 년 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정도로 아직 정교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은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증거라고 내놓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죠. 안 그렇습니까? 다른 학자들 간의 세미나에서 그런 추정을 내세우면 아마 비웃었을 겁니다.”

마르둑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남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수긍했다.

“그래서 그 대담자리에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본 겁니다.”

“단도...... 뭐라고요? 번역기에 잘 입력이 안 되었으니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십시오.”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답을 듣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단도직입이군요. 사실 남박사님에게 이런 얘기가 나올 것을 짐작은 했습니다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군요. 그럼 지금부터 말입니다.”

마르둑은 샛노란 눈으로 마치 빨아들이기라도 할 듯이 남현수를 응시했다.

“제가 7만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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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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