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 대북 접근법' 뜯어보기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상황은 아직도 매우 유동적

등록 2006.05.19 09:12수정 2006.05.1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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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국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 움직임을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해 전하는 <중앙일보> 1면 기사.

미국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 움직임을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해 전하는 <중앙일보> 1면 기사. ⓒ 중앙 PDF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이지만 북한이 유인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든 언론이 한결같이 내놓은 진단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이 제시한 6자회담과 평화협정 협상 동시 진행 방안은 이미 9·19 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다. 9·19 공동선언엔 빠져있는 평화협정 협상 시점을 '6자회담과 동시'로 구체화한 점은 있지만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부시 미 대통령은 새로운 대북 접근법 승인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내세웠다고 한다. 이게 문제다. 미국은 평화협정 협상을 진행하더라도 대북 금융제재는 지속할 것이라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금융제재는 안 풀 것이니까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하라, 그러면 평화협정 협상을 하겠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북한의 '선 금융제재 해제' 요구와 충돌한다. 상황 진전의 여지는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관심을 돌리자.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단독 보도한 <뉴욕타임스> 지면에서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부시 행정부 내의 많은 사람들이 북학 핵문제의 정면 해결은 너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최근의 내부 토론에 참여한 한 관리"의 말이다.

왜일까? 부시 행정부는 왜 북핵 문제의 정면 해결은 너무 어렵다고 결론 내렸을까? <뉴욕타임스>, 그리고 <중앙일보> 등 국내 언론의 분석은 이렇다.


첫째, 대북 제재의 효과가 별로 없다. 미 국무부 소식통조차 "미국은 50년간 대북 제재를 해왔기 때문에 추가로 제재를 가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둘째, 대북 제재의 수위를 올린다 해도 한국과 중국이 대북 경제지원을 계속하는 한 효과는 반감된다.


셋째, 이란 핵문제와 얽힌다. 북핵이 이란의 핵 개발 명분을 주고 있는데 미국으로서는 이란 핵과 북핵을 동시에 풀 여력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최근의 내부 토론에 참여한 한 관리"의 말처럼 "53년간의 전쟁상태 지속을 끝내는" 방안, 즉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는 앞서 짚은 대로 북·미 양측의 선결조건에 걸려 진척을 보기 어렵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53년간의 전쟁상태"를 빌미 삼아 군사적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다. 하지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는 별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제사회가 핵과 인권·위폐를 연계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군사적 방법을 동원하는 건 쉽지 않다. 동북아 정세도 녹록하지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없다. 대북 봉쇄책을 유지하면서 어정쩡한 상태로 그냥 놔두는 것 외에는 뽀족수가 없다. 바로 이 어정쩡한 상태 때문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강온파의 갑론을박이 계속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봉쇄책 강화 또는 선결조건 완화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결조건 철회, 즉 미국의 사실상 굴복이 아닌 한 상황 진전은 역시 기대할 수 없다.

북한과 남한의 경우

a 제4차 남북 장성급회담 마지막 날인 18일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북한 대표단이  남측 길강섭 대령의 안내를 받으며 남측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담은 특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끝났다.

제4차 남북 장성급회담 마지막 날인 18일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북한 대표단이 남측 길강섭 대령의 안내를 받으며 남측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담은 특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끝났다. ⓒ 사진공동취재단

거꾸로 보자. 북한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볼까? 나쁠 게 별로 없다. 시간을 끌면 핵 보유는 기정사실이 된다. 나아가 미국의 정권교체 여지를 보면서 협상 시점과 폭을 조율해도 된다. 시간은 북한편이다.

그럼 남한은? 엉뚱하게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입안한 사람은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다. 그는 온건파를 대표하는 국무부의 좌장이다. '우리나라 화폐를 위조한 나라를 그냥 둘 수 있느냐'는 강경파의 노기에 밀려 한동안 움츠리고 있다가 기지개를 편 것이다. 하지만 기지개를 펴다가 담이 들 수도 있다.

북한이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일언지하에 거부할 경우 라이스 장관의 반전 시도는 역공의 빌미가 된다. 강경파의 '거 봐라'란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주도권이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강경파는 대북 봉쇄책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고, 이런 움직임은 봉쇄망에 구멍을 뚫는 남한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진다. 남북교류의 속도와 폭을 제한하라고 다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남한은 이미 '몽골 발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공언해 놨다. 어떻게 될 것인가?

징후 몇 개만 짚자.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과 이를 위한 철도 운행 군사보장합의서 체결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이 보도되자마자 '시기상조'라는 반대주장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도적·물질적 지원'의 구체방안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상황은 아직도 매우 유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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