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죽은 자도 살려내는 '명약'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정계개편 '대선 승리' 보증수표 아니다

등록 2006.05.25 10:26수정 2006.05.25 11:46
0
원고료로 응원
a

위기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정계개편론'을 들고 나왔다. 정 의장은 지난 22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원장단 회의에서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으로 이번 지방선거가 솔직히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선을 바꿨다. 자강론에서 연대론으로 옮아갔다. 어제 그랬다. 지방선거 후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추진할 것이며, 고건 전 총리와 만나 협력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정동영 의장이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피해가기 위해 정계개편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분석도 있다. 지방선거 참패 후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 체제로 꾸려갈 것이란 전망이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열린우리당이 살 길은 정계개편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에 대다수가 동의한다. 특정인이 정계개편을 주장한다고 해서 저작권과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짚어야 할 건 정계개편이 '죽은 자도 살려내는 명약'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명약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세 번의 예비 진단이 필요하다.

① 누가 '중심'에 서는가

a

고건 전 총리. 정계개편은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 의장의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주장이 나오자마자 민주당은 "없어질 당과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며 분당에 대해 사과하고 민주당으로 복귀하라고 했다. 이런 기류가 지속되는 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통합은 어렵다.

물론 민주당의 이런 '으름장'은 주류측 작품이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주류 세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논평 하나만 갖고 성사 여부를 재는 건 온당치 않다.

하지만 더 아픈 얘기가 있다. 한나라당은 "과연 여당이 정계개편의 축이 될 만한 여력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의 단단한 구심이 되기는 어렵다.

방법은 하나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세우고 그 주위로 헤쳐모이는 방법이다. 어차피 지금 운위되는 정계개편은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으로라도 정계개편은 특정인의 영향력과 인기도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동영 의장은 고건 전 총리를 언급했다. 지방선거 후 고건 전 총리를 만나 협력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지방선거 전 협력을 요청했다가 딱지를 맞은 정동영 의장이 다시 선거 후 협력을 요청키로 한 데에는 고건 전 총리를 배제하고 정계개편을 추진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세우는 것과, 고건 전 총리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정동영 의장이 고건 전 총리에 바라는 것은 '협력'이다. 이 협력은 뭘 뜻하는가?

'옹립'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읽히지만 일단 접자. 정동영 의장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당장 쥘 수는 없다. 지금으로선 고건 전 총리를 중심에 놓고 정계개편을 전망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래서 묻는다.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은 대선 승리를 담보하는가?

대선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걷어내고, 전통적 지지층에 알파를 더 해야 한다.

관측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강금실 후보의 경우가 재연될 것으로 본다. 개인적 인기도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에 걸려 고꾸라진 전철을 고건 전 총리도 되밟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전망을 강화시키는 다른 논리도 있다. 고건 전 총리가 대권을 꿈꾸면서도 끊임없이 저울질을 하는 좌고우면식 행보를 보여 적잖은 비토층을 만들었으며, 이런 이미지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결합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자명하다는 논리다.

반론도 있다.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한 데 모이면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이 반론의 첫번째 근거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실체는 바로 '무능'인데 이는 고건 전 총리의 '행정 달인' 이미지로 극복 가능하다는 게 두번째 근거다.

다시 말해 첫번째 근거는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두번째 근거는 플러스 알파를 이끌어내는 주된 힘이라는 것이다.

② 정말 '대'연합을 이룰 수 있을까

a

정동영 의장의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주장이 나오자마자 민주당은 "없어질 당과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지난 17일 한화갑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강성관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산에 가서 말했다. 현 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했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건 뇌관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의 PK인맥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지역주의 회귀로 규정해 행동에 나서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은 이빨 빠진 꼴이 된다. '대'연합이 아니라 '중'연합이 되고, 더 나아가 반영남 연합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민주당 합당론 등을 어떻게 바라볼지가 정국 흐름의 키가 됐다"고 했다.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입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키를 꽂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압박이다. 개인 소신을 정치적 행위로 표출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역주의 대연합' 주장을 희석시킬 명분을 찾음으로써 여권 내 PK인맥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이다.

압박의 효과 여부는 미지수다. 정치인이 소신보다는 상황을 우선시하는 모습, 수없이 목도한 바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나서서 대연합 추진세력과 이른바 '맞장'을 뜨는 모습을 연출할지, 아니면 소신은 소신으로 놔두고 주도권을 넘겨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명분 찾기와 관련해선 <한겨레>의 보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대연합의 명분으로 '개헌'을 꼽았다. 열린우리당이 개헌을 지렛대로 새판 짜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개헌을 고리로 걸면 한나라당과 각을 세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모두 현 정부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한다고 못을 박아놨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각을 세운다고 해서 국민의 지지와 대연합의 명분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까? 정동영 의장은 지난 1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이 개헌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면서 "개헌 범위를 벌리면 불가능해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말이요, 영토조항이나 토지공개념 도입과 같은 '개혁 개헌'은 배제한다는 말이었다.

이런 개헌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것을 '민주개혁'으로 보면서 대연합을 지지할까? 아니면 정략으로 규정하면서 경계를 할까?

③ 대연합이 대선 승리 보증수표인가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구상은 대선을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럼 필승이라며 97년과 2002년 대선을 보라고 한다. 그럴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반한나라당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 차는 2% 안팎이었다. 어차피 박빙의 승부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97년과 2002년에 비해 '민주개혁'에 대한 열망 못잖게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그 결과 상당수 국민이 보수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이는 반한나라당 정서의 상대적 약화로 연결되고 있다.

더 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한나라당이 새로 꺼내든 카드가 바로 '서진정책'이다. 어차피 대선이 한자리수 싸움이라는 판단 하에 호남지역에서의 득표율 제고 전략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런 요인들보다 더 큰 게 있다. 대선은 정당보다는 인물이 우선시 되는 선거다. 따라서 누가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의 대표주자로 나설 것인지, 그 대표주자의 아킬레스건이 뭔지에 따라 대선 판세는 달라진다.

그렇기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지리멸렬보다 단일전선이 효과적인 건 분명하지만 그것이 보증수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