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한국전쟁 평가에는 이중기준이 필요하다

순수한 역사적 관점과 인도주의적 관점이 병행되어야

등록 2006.05.30 14:02수정 2006.05.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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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1950∼1953년)은 냉전 초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는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세계질서를 규정하던 냉전이 거의 해체되었으므로 이제는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본격화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평가할 때에 반드시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전쟁에 대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세대가 여전히 한반도에 생존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54세 이상의 남측 혹은 북측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지 한국전쟁의 직접적 당사자일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후삼국 시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왕건이 신라와 후백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동기는 분명 후삼국의 통일이었다. 오늘날의 역사적 평가는 바로 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 평가다. 이러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후삼국 시대의 통일전쟁에 대해서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삼국 당시에 생존했던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는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에 동원되었거나 혹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민중 개인의 입장에서는 ‘통일전쟁’이라는 것은 그저 ‘배부른 자’들의 논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민중 속에서 생활하는 역사가라면 왕건의 행위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당대 민중들의 ‘애환’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왕건의 통일전쟁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 평가는 그 다음 세대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함께 살고 있는 현대의 한국 지식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만 매몰된 채로 당대 민중들의 ‘고난’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해 순수하게 역사적 평가를 해도 될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6·25 세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도 54세 이후 세대가 여전히 국가 조세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고 있고 또 통일을 위해서는 이 세대의 협력도 얻어야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할 때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전쟁세대의 ‘아픔’도 이해해야

그러한 이유 때문에 2006년 지금 시점의 역사가로서는 54세 이상 세대와 54세 이하 세대를 동시에 고려하는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한국전쟁을 평가할 때에 이중 기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 그 이중기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한국전쟁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전쟁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 관점이라는 것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배제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에 돌아가셨다”느니 “우리 집과 전답이 한국전쟁 때에 불타버렸다”라는 등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배제한 상태에서 순수한 역사적 관점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국내외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김일성은 왜 한국전쟁을 개시했는지, 한국전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는지, 한국전쟁이 한반도 및 세계질서에 끼친 영향은 어떠했는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평가를 할 때에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4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당시가 냉전시대였다는 점, 당시 미국이 한반도·동북아를 상대로 패권 확장을 도모했다는 점, 당시 미국이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억압했다는 점, 당시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일성의 행위를 평가할 때에, 김일성이 위 4가지 요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을 개시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전쟁 개시한 객관적 조건 고려해야...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중요치 않아

그리고 이 같은 역사적 평가를 할 때에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국토의 일부가 외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묵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역사적인 죄악이 될 것이다.

미국이 남한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역사의식이 있는 지도자라면 남침을 결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반대로 소련이 북한을 지배하는 상황이었다면 역사의식 있는 지도자로서는 북침을 결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아니라 외세가 어느 쪽을 지배하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외세가 북쪽에 있었다면 북침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외세가 남쪽에 있었다면 남침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왕건의 통일전쟁을 평가할 때에도 우리는 고려와 후백제·신라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 전쟁을 개시했는가를 중시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그와 마찬가지다.

이러한 순수한 역사적 평가 못지 않게 인도주의적 평가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거나 혹은 불구의 몸이 된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에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과 북이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인명살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뚜렷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인 측면이 있다. 그리고 최근 강정구 교수가 보수세력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은 것도 강 교수의 역사인식이 틀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한국전쟁의 인도주의적 측면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이 강하다. 보수세력은 이 문제에 대한 전쟁세대의 ‘오해’ 내지는 감정을 악용하여 강정구 교수를 매도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개별 논문에서든지 혹은 강연에서든지 간에,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할 때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인도주의적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도주의적 책임도 반드시 거론해야

6·25를 직접 경험한 많은 분들은 “인민군이 상당히 신사적이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양민 학살과 관련하여 학계와 언론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에 의하면, 남측에서 발생한 양민 살상은 인민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주로 미군에 의해서 자행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할 때에 이러한 점들을 반드시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별 논문이나 강연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도주의적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보수세력은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오해나 감정을 악용하여 순수한 역사적 평가를 방해하려 할 것이다. 보수세력의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전쟁에 대한 인도주의적 평가가 반드시 병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한국전쟁을 평가할 때에 순수한 역사적 관점과 함께 인도주의적 관점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국전쟁의 진상을 일반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작업이 계속되어야만 민족화해와 통일이 하루라도 더 빨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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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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