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에 외국군 두고도 너희가 자주국가인가?"

중국 외교관 당소의의 조선정부 질타

등록 2006.05.29 13:19수정 2006.05.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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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한미군을 보고 자랐다. 50대 중반 이전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주권국가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거기에다가 수도 서울에 외국군 부대가 버젓이 주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수도에 부대를 배치할 때에는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수도 주둔 부대가 어느 날 갑작스레 쿠데타 부대로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수도 주둔 부대의 사령관 자리는 통치권자의 심복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만약 수도 주둔 부대가 통치권자의 심복 부대가 아니라면, 그것은 통치권자를 강박·압박하는 부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수도 주둔 부대는 통치권자의 뜻을 따르는 심복 부대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통치권자를 압박하고 통치권자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부대인 것이다.

서울 주둔 미군은 한국 대통령의 심복 부대인가?

그렇다면, 서울 동대문 인근이나 용산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군 부대의 경우는 어떠할까? 서울 주둔 미군 부대는 과연 한국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심복 부대일까?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일까?

만약 미군 부대가 심복 부대라면, 주한미군이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대중-노무현 등의 역대 대통령을 변함없이 모시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휴전선 부근에 있는 주한미군 부대와 서울에 있는 주한미군 부대는 성격을 달리하는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수도 서울에 주둔 중인 미군의 존재 이유는,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대통령을 압박·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이다.


예컨대, 금전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저당권을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부대를 청와대 가까이에 배치한 것은 한국 대통령이 역심(逆心)을 품지 못하도록 압박·강박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채권자, 한국은 채무자, 한국 대통령은 저당물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울 주둔 미군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압박하려는 물적 장치인 것이다. 그런 의도가 없다면, 대포 한 방이면 청와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지척 거리에 주한미군 부대가 배치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대포 한 방이면 청와대 날릴 수 있는 거리에 미군 배치

이처럼 주권 국가의 수도에 외국 군대가 버젓이 활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나라의 군대일지라도 통치권자가 신뢰할 수 없는 군대는 수도 밖에 배치하는 것이 상식인데, 외국군 부대가 주권국가의 수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현실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청일전쟁 직후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외교관 당소의(唐紹儀, 탕샤오위)도 동일한 느낌을 가졌던 모양이다. 당소의가 고종에게 간접적으로 던진 코멘트를 통해 그러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a 중국 탕자만진(鎭) 홈페이지에 소개된 당소의.

중국 탕자만진(鎭) 홈페이지에 소개된 당소의. ⓒ 탕자만진 홈페이지

당소의는 청일전쟁 이전부터 원세개(위안스카이)의 지휘 하에 한성 용산 등지에서 활약하던 청나라 외교관이었다. 청일전쟁 직전에 원세개가 본국으로 탈출하자 당소의가 1894년 7월 18일부터 8월 4일까지 일시적으로 원세개의 뒤를 이어 주찰조선총리교섭 통상사의 대리를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청일전쟁 이후인 1895년 12월 1일 조선통상각구화민총상동(총상동)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왔다. 청일전쟁으로 인해 조선-청나라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청나라 정부에서는 당소의를 정식 외교관 신분이 아닌 총상동(상공회의소 의장 격) 신분으로 조선에 파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실질적인 외교관이었다. 그리고 그 후 1912년에 당소의는 중화민국 최초의 국무총리에 오르기도 했다.

비록 민간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청나라 외교관인 당소의가 조선에 돌아오자, 조선 고종은 청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외교 공세에 들어갔다. 당시 고종이 청나라와 국교를 수립하려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의 한 가지는 청나라와 대등·평등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정권의 위상을 높여보자는 것이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1896년 6월 17일, 고종은 전 통서참의 변원규(卞元圭)를 불러 중국과 조약을 체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다음 날인 6월 18일 변원규의 지시를 받은 통역관 박태영(朴台榮)이 당소의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다.

이 날 박태영과 당소의가 나눈 대화는 자주국가에 관한 일종의 담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중국측 사료인 <청계 중·일·한 관계사료> 제8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태영이 "조선과 청나라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할지도 모른다"며 조약 체결 의사를 타진하자, 당소의는 "조선 군주가 러시아 공사관의 빈객이 되어 있는데, 이 어찌 독립국 군주라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그런 군주와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당소의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는 조선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그러자 박태영은 이번에는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러 간 민영환이 러시아 병사 3천 명을 조선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설이 있는데, 러시아 군대가 오기만 하면 우리 군주께서 반드시 환궁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참고로, 당시 이미 러시아 군대가 한성과 인천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러시아 차르 대관식에 참석하러 간 민영환은 러시아측에 추가 파병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당시 러시아 군대가 한성·인천에 주둔

박태영의 말은 '러시아 군대만 오면 아관파천이 끝나는데, 그때는 조선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겠는가?'였다. 그러자 당소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다른 나라 군대가 당신 나라의 도성에 주둔하면, 이것은 당신 나라가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다른 나라 군대 없이는 독립할 수 없다는 뜻이고, 또 당신 나라의 군주에게 자주 권한이 없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가 보호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 것이다. 도대체 (러시아의) 속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당소의의 말은, 외국 군대가 수도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런 나라와는 국교를 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외국 군대가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부각시키면서 조선의 조약 체결 요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외국군이 도성에 주둔하면 외국의 속방이 되는 것"

물론 당소의가 일부러 조약 체결을 기피하기 위해 외국군 주둔을 핑계 삼은 측면도 있지만, 러시아 군대가 한성과 인천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현실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날의 대화는 고종과 당소의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통역관인 박태영이 그 중간에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소의가 박태영에게 면박을 줘서 돌려보냈다는 것은 당소의가 고종에게 면박을 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조선과 평등한 조약을 체결하자는 고종의 요구에 대해 당소의는 "도성에 외국 군대를 두고 있는 너희가 자주국가냐?"라는 비웃음을 던진 것이다.

외국 군대에 의존하고 있는 고종이 청나라와 대등·평등한 조약을 체결하려는 모습이 당소의에게는 그저 우습고 한심하기만 한 일로 비쳐졌던 것이다.

수도 서울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현실은 1895년 당시의 당소의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미군이 활보하고 있다면, 그 어떤 외국인들이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미합중국의 '속방'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외국 군대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외국 군대가 그리 낯설지 않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주성이 희박한 나라가 된 것이다. 외국 군대를 빨리 내보내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도 우리와 똑같이 외국 군대를 보면서 자라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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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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