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동북아균형자 역할에 실패한 이유

고려 전기에는 어떻게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을까?

등록 2006.05.28 16:18수정 2006.05.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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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주창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사실상 이미 시들해진 상태에 있다.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 볼 때에는 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의 역할을 시도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향후 새로운 한국정부가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다시 시도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노무현 정부만큼은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외의 비판이 많았기 때문일까? 지지기반이 취약해서일까? 주변국들의 의심어린 눈초리 때문일까? 아니면, 한민족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을까?

향후 새로운 한국정부가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무현 정부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왜 실패했는가를 검토하기 위해서, 실제로 한민족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고려 전기와 비교·대조해 보기로 한다.

a 고려-북송-요나라의 3국 정립 시기.

고려-북송-요나라의 3국 정립 시기. ⓒ 김종성

고려 전기엔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균형자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10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초반까지 한민족은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중원-만주가 제각기 독자적인 세력권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같은 세력균형을 유지한 주축은 바로 고려였다.

고려가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중원과 만주(요동)가 통일될 수도 있었는데, 고려의 존재로 인해 중원과 만주의 세력이 각각 일정 한도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려 전기의 세력균형 시기는 다시 두 기간으로 세분된다. 고려-북송-요나라의 3국 정립(鼎立) 시기와 고려-남송-금나라의 3국 정립 시기로 나뉜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북송-요나라 시기에 고려가 어떤 방식으로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성공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려-남송-금나라 시대에 관하여는 다음 기회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고려-북송-요나라 3국의 정립은 10세기 중반부터 한반도-중원-만주에 각각 통일적인 지배자가 등장함에 따라 생긴 결과였다. 세 지역이 각각 유력한 세력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일종의 세력균형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후삼국의 분열을 통일한 고려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고, 만주(요동) 지역에서는 10세기 들어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거란족)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으며, 중원에서는 5대 10국의 분열을 극복한 송나라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이 시기에 고려-북송-요나라 3국은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멸망시킬 수 없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세력균형이 특정 국가의 단독 패권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력균형을 가능하게 했던 균형자가 바로 고려였다.

이 시기에 고려가 동아시아 역내(域內)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장편영락대전>(長篇永樂大典) 권124·150과 중화민국 한국연구학회 편 <중한관계사 국제연토회 논문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는 특정국가와의 동맹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럼, 이 시기에 고려는 어떻게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세부적 요인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어느 시대에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3가지 요인만 추출하기로 한다.

첫째, 고려는 특정 국가와의 동맹에 집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외교관계가 유연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고려는 중원 왕조인 북송과의 동맹에 집착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북송과 동맹을 체결했다가, 또 어떤 때에는 요나라와 동맹을 체결했다. 예컨대, 유명한 외교관 서희가 활약한 993년 제1차 고려-요나라 전쟁 이후에는 고려와 요나라 사이에 동맹이 체결되기도 했다(995년).

그 이후에도 고려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동맹의 대상을 '물갈이'했다. 그래서 북송과 요나라는 고려를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려가 어느 한쪽과 동맹을 하면서도 다른 한쪽을 결코 버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995년부터 고려는 요나라와 동맹을 체결했지만, 그때부터 고려는 북송과의 비밀 교류에 들어갔다. 이것은 당시의 고려 지도부가 외세를 철저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고려는 외국 간의 전쟁 혹은 분쟁에 휘말려들지 않았다. 예컨대, 986년에 북송이 고려에 "요나라를 협공하자"는 제의를 했지만, 고려는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송과 요나라의 전쟁에 휘말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고려의 협공 거절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고려에게 '퇴짜' 맞은 북송은 그 때문에 요나라에 대한 전략을 공격 전략에서 방어 전략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고려의 균형자 역할이 북송-요나라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남의 나라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대신, 고려는 자국에 대한 외국의 침략만큼은 철저히 분쇄했다. 고려가 3차례에 걸친 요나라의 침공(993·1010·1018년)에 적극 대항한 것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나라 전쟁에 불필요하게 휘말려들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는 균형자 역할에 필요한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북송의 협공 요청에 쉽사리 호응했더라면, 정작 고려 자신을 지킬 만한 에너지를 남겨 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려가 당시 균형자가 될 수 있었던 셋째 요인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고려가 자주국방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외국 군대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군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주국방을 했기 때문에 북송의 협공 요청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가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주국방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외교관계에서 기본기 부족?

지금까지 논의한 점을 정리하면, 고려가 당시 균형자 역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관계의 유연성 ▲국외 중립 ▲자주국방 때문이었다. 이러한 3대 특징은 비단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꼭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럼,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한 노무현 정부는 과연 '기본'에 충실한 정권이었을까? 과연 고려처럼 균형자 역할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추려 했을까? 그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오'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기본기'에 있을 것이다. 학급에서 2등이 1등을 쉽게 추월하기 힘든 것도 두 학생의 '기본기' 차이에 있을 것이다. 세련되고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보다는 기본기를 착실히 다져 두는 데에서 실력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동북아 균형자가 되겠다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상태에서 뒤늦게나마 기본기에 충실하려 하기보다는 몇 마디의 화려한 외교적 언사로 국민의 귀를 즐겁게 하는 데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본기'의 부족 때문인 것이다. 그럼, 한국의 외교관계는 어떤 측면에서 기본기를 결여한 것일까?

한국의 외교관계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고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외교관계가 유연하지 않다. 미국 없이도 잘사는 나라가 많은데, 일부 한국인들은 미국 없으면 금방이라도 대한민국이 멸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정권 담당자들은 한미동맹 종결 이후의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중원의 송나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고려인들이 외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외세에 의존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가 동북아 균형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또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미국의 파병 요청에 대해 "No!"라는 대답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병 문제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가 손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문제도 아닌 남의 문제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상실하는 나라가 과연 동북아 균형자가 될 수 있을까? 균형자가 되려면 기본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처럼 남의 문제 때문에 자기 에너지를 낭비하는 나라가 과연 균형자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국방의 문제다. 남과 남 사이에서 균형자가 될 수 있으려면, 남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재판관은 원고와 피고 쌍방으로부터 독립적인 상태에 있어야만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 '재판관'이 '피고'의 군대에 의존하여 나라를 지키고 있다면, 과연 공정한 '재판'이 나올 수 있을까? 미군에 의존해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이, 그 미국이 활약하는 동북아에서 균형자가 되겠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일 것이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창한 이후에라도 ▲외교관계의 유연성 ▲국외 중립 ▲자주국방을 시도했다면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는 말로만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했지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했다. 미군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군·경을 동원해 자기 나라 국민의 '보금자리'를 파괴하는 정권이 무슨 수로 도덕적인 균형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동북아 균형자가 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새로운 한국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 균형자가 되고자 한다면, 외교관계를 유연하게 하고 또 불필요하게 남의 문제에 휘말려들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자주국방 노선을 철저히 견지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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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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