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28] 미치광이풀

등록 2006.06.02 09:12수정 2006.06.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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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정민 선생의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이 나온 이후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익숙한 말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통달하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겠지요. '미친다'는 말이 '닿았다'는 뜻과도 통하는 것이니 제대로 미친다면 그 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간혹 '꽃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꽃에 미치려면 멀었는데,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꽃에게 미안합니다.

꽃 이름들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냥 붙여진 이름이 없고 그 특징들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름이라서 사람들 이름은 잘 잊어버려도 우리꽃 이름은 한번만 들어도 입력이 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 이래서 이 이름이 붙은 것이구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죠.

독성이 있어서 잘못 먹으면 미칠 수도 있어서 '미치광이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도 있습니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화사한 꽃인 줄 알았는데 수수한 꽃이라는 것에 조금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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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숲에 봄나물이 한창 돋아날 무렵이었습니다. 산나물을 하러 다니는 이들이 연록의 산을 많이 찾을 무렵이었지요. 내 산행의 목적은 꽃을 만나기 위함이지만 간혹 두릅 같은 귀한 것들을 만나면 꺾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힘들지요.

어느 날 산중에서 산나물을 하는 이들과 만났습니다.


"혹시 봄나물이 어디 많은지 아세요?"
"글쎄요. 지나온 곳 보니까 이미 두릅은 다 꺾어갔던데요."
"무슨 사진을 찍으시죠?"
"야생화사진이요. 혹시 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꽃? 못 본 것 같은데요?"

마침 점심시간이라 계곡 근처에 자리를 잡고는 싸온 도시락을 먹습니다. 나도 김밥 한 줄을 꺼내놓고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지요. 산에서 만나면 금방 친구가 됩니다. 그것이 어쩌면 자연의 힘이겠지요. 빌딩 숲에서 만나면 모두 경쟁상대로 보이는데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는 친구로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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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밥을 먹고는 계곡 근처를 보니 미치광이풀도 한창이고, 족두리풀에 금붓꽃까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꽃이 굉장히 많은데요."
"나물도 많네요."

그래요.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달랐고, 찾는 것이 달랐기에 보고자 하는 것이 눈에 띄기 마련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같은 곳을 보아도 자기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보이기 마련이겠지요.

미치광이풀의 이파리가 연한 것이 참으로 맛나게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이 분들이 나물로 알고 먹을까봐 꽃 이름이 '미치광이풀'이고, 잘못 먹으면 독성이 있어서 미칠지도 모르니까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성지게 자란 것은 초식동물들도 독성 때문에 먹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은근히 겁도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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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러나 미치광이풀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방에서 잘 사용하면 진통을 가라앉히는 좋은 약재가 되거든요.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미치도록 미치고 싶다.
설 미쳐 살아가느니
미치도록 미치고 싶다.
미치다보면 미치는 법
미친 이들은 다 미쳐있는 법
어느 날
미쳐있는 나를 보고 웃고 싶다.

(자작시 '미치광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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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절실한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미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혹 부정적인 의미지만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이라고도 하고 "미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세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치지 않고 이룰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언가에 미친다는 것, 몰두한다는 것, 그래서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것, 그래서 남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긍정과 부정의 두 날개가 있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남들에게 아픔을 주는 그런 광기가 담긴 미침이 아니라 웃음과 행복을 주는 그런 미침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미치광이풀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미치지 않고 무엇을 이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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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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