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 왜 분사를 반대하는가?

전통적인 신 관념과 1953년 전범 사면 결의안 때문

등록 2006.06.03 17:52수정 2006.06.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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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 야스쿠니신사 분사(分祀) 논의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된 A급 전범 14인을 다른 곳에서 제사지냄으로써 위기에 빠진 아시아 외교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야스쿠니신사 측과 전범 유족들은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야스쿠니신사 측은 "설령 유족들이 분사에 찬성하는 한이 있더라도 야스쿠니신사 입장에서는 분사란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해 한·중 양국의 비판 및 견제를 초래함은 물론 미국까지 나서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마당에 야스쿠니신사 측은 왜 분사를 반대하는 것일까? 수렁에 빠진 아시아 외교를 구하려면 나중엔 어떻게 될지라도 일단은 분사에 동의하는 게 현명한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는데, 야스쿠니신사 측은 왜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일까?

a 야스쿠니신사 안에 있는 유수칸이라는 박물관.

야스쿠니신사 안에 있는 유수칸이라는 박물관. ⓒ 야스쿠니신사 홈페이지

지난 2004년 3월 3일 야스쿠니신사 사무소(社務所)는 자신들이 왜 분사를 반대하는지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얼마 전인 2월 15일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아사히 TV>에 출연하여, A급 전범의 분사를 주장하면서 "신사 측의 반대로 분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은 2월 16일자 <아사히신문>에도 보도되었다. 야스쿠니신사 측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것은 나카소네 전 총리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발표문에서 나타난 분사 반대론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신(神, 가미) 관념이 분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1953년 5월 중의원 결의에 의해 A·B·C급의 모든 전범이 사면되었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측은 전자(前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각각의 이유를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분사하면 전체 신격의 통일성이 파괴

첫째, 분사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신 관념에 배치된다는 게 신사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2004년 10월 17일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246만 6532위의 신들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신격(神格)을 갖게 된다고 한다. 관념적으로 볼 때에는, 이 신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신격'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쉽게 이해하려면 유권자로서의 국민과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분리하면 된다. 예컨대 인구가 1만 명인 국가에서 유권자로서의 국민은 1/10000의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개별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전체적으로 1을 형성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개별 국민 A는 유권자로서는 1/10000의 지분을 갖지만 주권자로서는 다른 10000명과 함께 1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신사 측의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신사 안에 모셔진 모든 신들은 관념적으로 '하나의 신'으로 통일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일된 전체 신(神)에서 A급 전범 14위의 신격만 따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게 신사 측의 논리이다.


14위의 신만 따로 분리해서 다른 곳에서 제사 지낸다 해도 나머지 246만 6518위의 신격도 그 14위의 신과 함께 동일한 곳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전체 신들의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합사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사 측의 인식이다.

공식적으로는 일본 내에 A급 전범이 없다

둘째 야스쿠니신사 측이 분사 논리에 쉽게 호응하지 않는 배경에는 1953년 5월 일본 중의원의 '전쟁범죄에 의한 수형자 사면에 관한 결의안'이 있다. 일본에서는 1953년에 모든 전범이 다 사면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A급 전범은 1956년, B·C급 전범은 1958년까지 모두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미국의 지지 하에 생긴 일이다. 미국의 지지 하에 일본 정부가 사면과 석방을 단행했으므로, 지금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전범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A급 전범들이 국가적으로 모두 사면을 받은 마당에 A급 전범의 합사가 따로 문제될 필요는 없다는 게 신사측의 생각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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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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