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의 고구려는 광대한 요동(만주)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원(中原)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요동이 고구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으므로, 한족(漢族) 왕조들은 고구려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분열기에 접어든 3세기 때부터 요동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고구려는 407년 후연(後燕)의 멸망을 기회로 요동의 중심부를 석권하였으며, 432년 북연(北燕)의 멸망을 기회로 요동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할 때까지 수백 년 동안 요동의 주인으로 군림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수백 년간 요동을 지배하면서 한족 왕조들을 위협했던 고구려가 바로 코앞에 있는 중원을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할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3세기~6세기)의 분열기에 빠져 있었는데, 고구려가 그 같은 호기를 활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과 관련하여 크게 2가지 정도의 측면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10세기에 가서야 요동이 동아시아의 대립축으로 등장
첫째, 10세기 이전까지는 동아시아 세계의 대립축이 중원 지역과 만리장성 서북 지역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가 활약하던 시대까지만 해도 요동 지역이 만리장성 서북 지역을 능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만리장성 서북 지역에 근거지를 둔 흉노·돌궐족 등이 중국을 위협하는 핵심 세력이었다.
그리고 10세기 이후로는 만리장성 동북지역에 근거한 거란·여진·몽골족이 중국을 위협하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래서 한중관계사의 권위자인 서강대 김한규 교수는 10세기 초반을 동아시아 역사에서 획기적인 시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시기 이후로는 동아시아 세계의 대립축이 만리장성 이남 지역(중국)과 만리장성 동북 지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김한규 교수의 견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세계의 대립축이 만리장성 서북쪽에 있던 시절에, 고구려는 만리장성 동북쪽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때를 잘못 타고 나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백제가 고구려 견제
둘째, 고구려가 요동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시기에 신라·백제가 급성장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가 요동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부터 신라·백제는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강력한 영토국가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고구려 남쪽에서 신라·백제가 급성장한 것은 고구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고구려가 중원과 한반도의 협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는 국력을 중원과 한반도 양쪽에 안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고구려가 중원 진출에 전력(全力)을 다할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전성기에 들어선 고구려가 동족 국가들인 신라·백제의 견제를 받았다는 점 ▲10세기 이전까지는 요동이 동아시아의 힘의 중심으로 등장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고구려가 수백 년간 요동의 주인으로 군림하고도 바로 코앞에 있는 중원을 끝내 장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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