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분사할 것은 A급 전범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 본성

등록 2006.06.09 11:02수정 2006.06.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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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의 야스쿠니신사 분사(分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내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7일 난부 도시아키 야스쿠니신사 궁사(宮司)는 신사를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A급 전범을 분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스쿠니신사는 지난 2004년 3월 3일에도 분사에 반대하는 신사 측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분사로 인해 야스쿠니 신들의 전체적 통일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 ▲A급 전범이 이미 1953년에 모두 사면되었다는 점 등이 분사 반대 논리였다.

난부 궁사는 이 날 신사를 방문한 ‘평화를 원하고 참된 국익을 생각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젊은 국회의원 모임’(야스쿠니 의원 모임) 소속 국회의원 30여 명에게 “신사 창설 이래 한 번도 분사를 한 적이 없다”면서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야스쿠니 의원 모임’은 2005년 6월 신사 참배론자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주도적으로 창설한 모임으로서 현재 130명 정도의 소속 의원을 두고 있다.

A급 전범 분사 요구에 대한 야스쿠니신사 측의 대응을 보면서, 이 문제가 엉뚱한 종교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도(神道) 관념상 분사가 가능한가 아닌가 하는 점은 현재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문제는 종교문제가 아니다

야스쿠니신사를 포함한 일본 사회는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변국들이 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문제시하는 것은, 일본 신도의 종교 관념을 훼손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본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주변국들이 우려하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의 핵심 기능이 군국주의적 사회통합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군국주의적 사회 통합이 과거에 이미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준 ‘전과’가 있기 때문에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변국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이 따로 분리되느냐 마느냐 하는 게 아니다. 주변국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일본이 대외 침략적 본성을 버리느냐 아니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급 전범 14명이 분리된다 하여도, 야스쿠니신사에는 여전히 246만6518위의 ‘전범’들이 남게 된다. 그러므로 A급 전범이 분리된 후에도 야스쿠니신사는 여전히 전쟁범죄를 옹호하고 신성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 사회의 침략 본성이 소멸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일본 사회가 대외 침략적 본성을 버린다면,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에게 제사 지내건 특A급 전범에게 제사 지내건 그것을 문제 삼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일본 사회의 침략주의 본성이 근본 문제

“내가 아는 평범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순진하고 평화를 희망하던데, 일본인들에게 침략주의 본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일반화가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평범한 일본 국민들이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은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있는 미국인들 역시 전쟁을 혐오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전쟁을 선동하는 지도자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대개 전쟁을 혐오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외침략을 결정하는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점이다. 특정 사회의 개개인들이 평화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 사회 자체가 대외 침략적이라는 사실은 얼마든지 병존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평화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자체가 전쟁지향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평화적 문제 해결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회는 경제공황 등 중대 위기에 직면하면 대외침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평화로운가는 부차적 문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주변국들이 일본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 개개인들이 선량하고 예의바르며 근면하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결정적 순간에는 대외 침략적 방법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순수한 개인일지라도 공동체가 위험에 직면하면 집단적으로 비이성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문제 해결 시스템이 취약하면, 개인이건 집단이건 간에 위기 상황 앞에서는 비이성적 태도를 표출하기 쉬운 것이다.

평화적 해결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중대한 위기가 발생하면 대외 평화적인 지도자보다는 대외 침략적인 지도자가 ‘두려움에 떠는 선량한 일반 국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침략주의적 경향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화적 문제 해결 시스템이 취약한 나라

일본 내에서 평화적 시스템이 정착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라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시대 이래 군국주의적 대외침략에 참여한 혹은 동원된 전사자들을 호국신으로 떠받드는 일본 사회의 풍토 위에서 평화적 문제 해결의 전통이 싹트기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또 그런 사회에서는 결정적 순간에 ‘양심적이고 평화적인 지도자’가 부각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진정으로 ‘선한 이웃’이 되고자 한다면, 평화적 문제 해결의 시스템이 사회 저변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일차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A급 전범을 분사한다 하여도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신사에서 진정으로 분사되어야 할 것은 A급 전범이 아니라 바로 일본사회의 침략 본성인 것이다. 그 같은 침략 본성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일본이 어떤 말을 하건 간에 일본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우려와 비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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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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