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사진) 열린우리당 의장이 '올인' 전략을 택했다.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라고 했다. 국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뜻의 '제민지산'(制民之産)도 운위했다.
서민들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데에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궁금한 건 방법이다. 김근태 의장은 '추가성장론'을 폈다.
잠재성장률을 적어도 1%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겠다며, 이를 위해 48조~80조원에 이르는 여유자금을 투자부문으로 끌어낼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CEO 출신인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한 데 이어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등 실물경제에 밝은 인사들을 중용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먹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소리다. 하지만 선뜻 당기지 않는다. 호언장담이 먹혀들 만큼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서민이다.
재벌에게 줄 '당근'
48조~80조원에 달하는 여유자금을 투자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증시를 활성화하거나 예금금리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한때 1500선을 돌파했던 주가는 1200대로 떨어져 있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 덕에 연리 5%대의 특판예금에 돈이 몰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돈이 기업 대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은행의 총여신 가운데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에 몰려있는 게 현실이다. 또 금리를 추가 인상하면 경기상승 기조가 둔화될 수 있다. 일자리 조금 더 늘리려다가 더 큰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굳이 시중 여유자금을 끌어들일 이유도 없다. 기업 금고에 돈이 수북이 쌓여있다는 보도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도 기업의 설비투자율은 극히 저조하다. 91~96년에 11.1%에 달하던 기업의 설비투자율이 2001~2005년에 1.1%로 떨어졌다. 10분의 1토막이 났다. 기업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이 막혀서 투자를 못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기업을 독려해야 하고, 기업을 독려하려면 당근을 줘야 한다. 기업이 손가락 뻗어 까딱거리는 당근은 출자총액제한제와 수도권공장총량제다. 폐지하라고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정부나 열린우리당 모두 폐지 또는 개선을 언급해왔다. 물길은 잡힌 셈이다. 재벌의 순환출자 폐해는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법 하지만 제쳐두자. 이게 더 궁금하다. 그럼 투자가 활성화될까?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 대상이 되는 곳은 재벌이다. 그것도 자산 6조원 이상의 대재벌이다. 이들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에 고무돼 신규투자에 나선다 해도 덩치가 너무 커 보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수도권공장총량제 폐지는 매혹적이다. 당장의 고용창출을 기대할 수도 있다. 마침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문수 후보가 경기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여차하면 경기도의 요구에 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기조가 흔들린다. 참여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전면 수정돼야 하고, 지방의 반발은 극심해진다.
피해가는 방법이 있다.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서비스와 건설부문을 진작시키는 방법이다. 지방선거 참패 직후 열린우리당 안에서 부동산과 세금정책을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 함께 묻어나왔던 얘기다. "내수진작책과 기업경기 활성화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쉬워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따로 가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 3월말 현재 은행의 음식·숙박업 대출잔액은 14조2492억원으로 2004년 3월말에 비해 1조원 넘게 줄었다. 음식·숙박업 불황에 따라 돈 떼이는 걸 우려해 선제적으로 대출금 회수에 나선 것이다.
정부도 일찌감치 방어선을 쳤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며칠 전 정례브리핑을 하면서 참여정부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은 걸 자랑했다. 부동산 규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여전하다.
어차피 힘이 빠져가는 정부다. 원내 제1당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전향'을 반기는 한나라당의 협조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내놔야 한다. 정체성이다. 당 노선의 정체성, 참여정부 정책의 정체성을 담보물로 내놔야 한다. 김근태 의장 개인의 정체성도 물론 저당 잡혀야 한다.
이미 시작된 열린우리당의 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