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들이 이 꽃을 좋아하게 된 이유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38] 무늬비비추

등록 2006.07.12 21:28수정 2006.07.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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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비추는 멕시코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귀화식물임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아낙들의 사랑을 받아가며 화단이며 인가 근처에 자리를 잡아 친숙한 꽃이 되었다. 비비추는 꽃이 피기 전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식물이다. 게다가 무늬비비추는 이파리에 들어 있는 무늬가 아름다워 꽃이 지고 나면 이파리의 아름다움에 해가 될까 얼른 꽃대를 잘라주기도 한다.

비비추는 반 음지에서 잘 자라며 해가 잔뜩 길어지는 여름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꽃이 피는 시간은 오후 5시경, 저녁을 지을 시간쯤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계가 없던 시절 여인네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꽃이었단다. 아마 이런 연유로 인해 비비추가 우리네 마당 화단으로 쉽게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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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가늠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꽃의 피고 짐을 보면서 시간과 계절뿐만 아니라 그 해의 농사까지도 풍작일지 흉년일지 예측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팝나무 꽃이 무성하게 피는 해는 풍년이 든다든가, 견과류가 잘 되면 흉년이 든다든가 하는 예측들도 그와 같은 연장선상일 것이다. 식물과는 관계가 없지만 개미들이 집 근처에 흙을 쌓기 시작하면 곧 비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도 이와 통하는 것이다.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연을 보면서 이런 저런 정보들을 얻는 삶은 지극히 '자연적인 삶'이요,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살아가니 그만큼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살았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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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비추의 다른 이름 중에서 '연지화'라는 이름이 있다. 여기서 '연지'는 '연지곤지'할 때 '연지'다. 가을이 되면 검정콩 모양의 주름진 씨앗이 익는데 그 씨앗을 잘 말려서 갈면 얼굴에 바를 수 있는 하얀 분이 생긴단다. 그것으로 여인네들이 얼굴단장을 했기에 '연지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밥 지을 시간을 알려줄 뿐 아니라 얼굴단장까지 할 수 있게 하는 비비추였기에 귀화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화단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비비추의 꽃대는 길쭉하다. 꽃봉오리일 때는 몇 송이가 필지 가늠이 되지 않다가 이내 긴 줄기를 내면서 띄엄띄엄 하나씩 꽃을 피운다. 이런 경우 구도를 잡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오래 전부터 비비추를 만났고, 카메라로 수도 없이 담았으면서도 선뜻 소개하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도 있다.

함께 있을 때는 하늘을 향해서, 홀로 꽃을 피울 때는 땅을 향해 피우니 하늘과 땅의 마음을 모아 핀 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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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하루 피었다 지는 꽃이라도
마음에 담긴 것은 하루가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꽃이라도
마음에 하늘만 담은 것이 아니다.

하루 같은 천년, 천년 같은 하루
땅 같은 하늘, 하늘 같은 땅

오늘 피었다 내일 떨어질 꽃이라도
천 년의 세월을 담겨있다.

(자작시 '비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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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비추의 연한 싹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이파리는 한약재로 사용된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유익한 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람의 손에 의해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이들의 생존전략이다.

야생화를 조성하는 곳마다 빠지지 않는 꽃 중에 하나가 비비추다. 덕분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이렇게 지천인 꽃, 올 가을엔 잘 익은 씨앗들을 모아 아내에게 연지분을 하나 선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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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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