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에 인정 끼워 파는 '소통 공간'

[이철영의 전라도 기행 56] 광주시 북구 ‘말바우 시장’

등록 2006.07.12 18:21수정 2006.07.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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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창평에서 온 할머니가 2천원짜리 백반을 시켜먹고 있다. ⓒ 이철영

돼지고기 몇 점을 숭덩숭덩 썰어놓은 국으로 열 명 넘는 식구가 나눠 먹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떼를 써서 시장엘 따라가면 땅콩 맛 캔디, 붕어빵 같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던 그곳에서는 한 줌이라도 더 가져가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흥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콩나물에 많이 집착했다. 큰 나무통 속에 빽빽이 꽂혀 있던 콩나물을 놓고 '주네, 못 주네'하며 뽑히고 도로 심어지다 많이도 뭉그러졌다. 철없는 어린 인생은 시장을 따라 다니며 세상의 문을 빼꼼이 열어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힘들다고 낑낑대던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나는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을 시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분은 좌판에서 생선을 팔고 있었다.

못 본 척 그 앞을 슬쩍 지나치려던 나는 허둥대다 그만 진창에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은 주변이 떠나가게 껄껄껄 웃어 제쳤다. 그리고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창피해 하는 어린 중생에게 큰 소리로 네 글자의 화두를 던져 주었다.

깨어보니 허망한 꿈이었으나 너무도 생생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왜 하필이면 시장에 와서 날 괴롭혔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얼마 뒤, 내 무의식이, 나의 성장통을 시장에서 팔아 치워 버리기 위한 계략이었으리라 결론지었고, 스스로의 탁견에 대견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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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이 오가는 채소전 풍경.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에 밀려 사라져 가고, 남아 있는 것마저 유통만이 존재하는 현대화된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장은 본디 삶의 용광로였다. 교통과 통신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 사람들은 세상사의 소식을 장에서 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곳에는 인간과 인정, 진정한 소통의 문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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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현대의 시장과 마트, 백화점은 어떤가. 넘쳐나는 규격화된 상품의 포위망, 거대화된 자본의 그물 속에서 우리는 헤어나지 못한다. 양손 가득, 차 트렁크 가득 욕망의 덩어리들을 들고 나온다. 흐뭇한 승리의 미소를 짓지만 정작 팔린 것은 상품이 아니라 '나'이다.

남겨진 나의 그림자가 애타게 부르는데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도 멀리 떠나와 버렸고, 다시 돌아갈 길은 아득하다.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시장은 추억 속에 묻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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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에게 시장은 온통 호기심 천국. ⓒ 이철영

광주에서는 말바우 시장이 그나마 시골의 오일장과 도시 재래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말바우 시장은 광주의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서방 시장의 주변에서 장사하던 노점들이 쫓겨 가 형성된 곳이다. 서방시장이 매일 여는 시장으로 상설화되면서 말바우 시장은 2, 4, 7, 9일 장날을 이어 받아 장이 선다. 지금은 '광주의 가장 큰 시장'이라 칭할 만큼 큰 시장이 되어있다.

말바우 시장은 주로 광주 북구지역의 주민들이 애용하는데, 담양 등지에서 직접 재배한 값싸고 싱싱한 농산물들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아직도 "말바우 시장 간다"하지 않고 "말바우장 본다"고 말한다.

노점들의 주인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말바우장을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딱히 살 것이 없는데도 장날 기분에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귓전에 왕왕 대는 시끌벅적한 소리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들을 귀 기울여 보면 TV드라마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언니 뭐 사러 왔어?"
"응, 그냥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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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굼벵이, 말린 개구리, 불개미 등을 파는 약장수 아저씨. ⓒ 이철영

평생 전라도의 온갖 장을 다 돌아다녔다는 약장수 아저씨가 한 마디 한다.

"아무리 맛있는 소고기도 미원 넣고, 양념 넣어야 제 맛이제. 지네, 굼벵이 뽀사 넣고 꼭 불개미를 양념으로 넣야혀."

윽! '미원'이라니. 갑자기 불개미가 목구멍 속을 돌아다닌다. "말바우장이 꽤 크네요"하고 모른 척 물었다. 프로 약장수의 과장법이 발휘된다.

"암, 광주서 제일 큰 장이여, 다 볼라믄 새꺼리(새참) 묵고 돌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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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할머니는 꽤 멋쟁이다. '주변 사람들이 장터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 안 본다"고 은근히 자랑이다. ⓒ 이철영

담양 창평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도 한 말씀하시는데….

"오늘은 안 나올라고 했는디, 밭 매러 갔다가 상추가 하도 좋아서 뜯어 가지고 나왔어. 상추도 뜯어 오고, 메주콩 심을 라고 도라지도 캐고, 나는 자식들한테도 행여 마트같은 디서 사묵지 말라고 그래. 째까(조금) 묶어 놓고 싱싱 허도 않은 거 오백원, 천원 받아 묵으먼 쓰간디?"
"팔아서 손주들 용돈도 주시고 그러시겠네요."
"뭐 손지들 용돈을 줘, 내가 다 써야제."
"사진 값으로 깻잎이나 하나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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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좌판에 않아 입담을 과시하고 있는 경력 25년의 신발 장수(가운데). ⓒ 이철영

맞은 편 의류 매장에서는 목소리가 제법 높다.

"아, 저 할머니 땜에 미치겄네. 위아래가 한 벌에 오천원인디, 바지만 두개 달라고 다섯 번이나 와부요."

그 말 끝나고 얼마 안 돼 할머니 또 와서 달라한다.

"할머니 땜에 미쳐 불겄네, 그냥 가져 가씨요."

결국은 못 이기고 바지만 두개 팔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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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또 종이상자 위에 오이를 놓고 팔던 할머니는 아주 욕심 많은 손님한테 걸렸다.

"하나 더 주씨요."
"오메, 오이 폴다 망허겄네, 도꾸인(단골)께 요러고 주제, 오메 천원아치인디 이천원아치 되아 부네. 마수(마수걸이)라 많이 준께 다음에 또 오씨요, 잉."

그러다 문득 엉뚱한 데 불똥이 튀었다.

"근디 이뿌도 않은 오이 장시 뭐할라 사진 찍어 싸!"
"촌사람들 출세하라고 테레비에 내 줘?"

웃으면서 등짝을 내려치는 손매에 눈물이 찔끔 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 사보 7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oil' 사보 7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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