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도발, 심심하게 끝났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밑진 것 없는 청와대 모임

등록 2006.08.07 10:32수정 2006.08.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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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밑진 것 없는 모임이었다.

<경향신문>은 "노 앞에선 'NO' 못 하는 여"의 태도를, <세계일보>는 "또 움츠러든 김(근태) 의장"의 모습을 주요 뉴스로 뽑았다. 이런 묘사로 부각되는 건 '확실하게 군기 잡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로써 손상된 대통령의 권위는 최소한 이미지상으로는 회복됐다.

실체도 있다. 김근태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당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근태 지고, 노무현 뜨고?

노무현 대통령이 발끈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문제였다. 법무장관 후보를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열린우리당이 먼저 나서서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안 된다며 다른 사람을 건의했다. 시어머니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발칙한 도발'이었다.

김근태 의장의 사과 덕에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는 넓어졌다. 진격로와 퇴각로가 동시에 열렸다. 문재인 카드를 꺼내들면 '당이 존중한' 인사권 행사 차원으로, 문재인 카드를 접으면 '당이 건의한' 민심 수용 차원으로 설명하면 된다. 대통령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전 수석의 기용 여지가 "반반"이라고 했다. 오로지 대통령의 처분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 정도로 갈음하자. 어차피 '문재인 폭탄'의 폭발력은 반감됐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당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큰 배다. 선장이 눈에 안 띈다고 해서 하선해서야 되겠는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바깥에서 선장이 올 수도 있다."

지난 2일, 핵심 참모들에게 한 말도 있다.

"나더러 나가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탈당할 생각이 없다. 나갈 사람들은 자기들이 나가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고수 방침은 확연해졌다. 이에 따라 친노 세력의 열린우리당 잔류도 분명해졌다. 그럼 범여권 통합은 어떻게 되는 걸까?

범여권 통합, 그 몇 가지 경우의 수

얼핏 봐서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 어차피 범여권 통합론은 노무현 대통령(세력) '배제'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비노'니 '반노'니 하며 스펙트럼은 조금씩 달리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배제'의 방법론은 달랐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경우 당 대 당 통합은 절대 안 된다며 헤쳐모여식 통합을 주장한 바 있다. 통합을 원하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오라는 주문이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는 '자강'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당의 체력을 키우고, 적절한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을 해주면 통합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던 차에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고수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필요하면 대선 후보를 외부에서 영입해서라도 스스로 살 길을 찾을 테니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라는 식으로 선을 그었다.

이러면 '비노' 또는 '반노' 성향의 인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섣불리 행동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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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고수 방침은 결과적으로 한화갑 대표의 헤쳐모여식 통합론에 힘을 실어준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되지 않는다면 '비노' 또는 '반노' 세력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스스로 뛰쳐나가 제3지대에서 다른 정파와 헤쳐모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해 보자. 누가 '정치 철새' 소리를 들을까? 거꾸로 말하자. 누가 '정통 세력'이 될까? 당을 지키는 세력이 일단 명분을 쥘 것이란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을 고수할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은 여권 내 영남세력을 대표한다. 이들을 박차는 순간 범여권 통합은 지역주의 회귀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이른바 '정통 세력'으로부터 '분열 세력'이란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런 부담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수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당 잔류 세력을 극소수의 '몽니 집단'으로 내모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헤쳐모여식 통합이 대선 필승 해법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부에서 선장을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 나갈 사람이 나가더라도 대선 후보를 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뭘 뜻하는가? 한나라당 후보, 헤쳐모여식 통합 후보 외에 제3의 후보가 등장한다는 얘기다. 이러면 '비노' 또는 '반노' 세력에게 대선 필패 상황이 열린다.

그 뿐이 아니다. '외부 선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 예를 들어 지금의 여권 인사가 아니거나, 전국 대표성과 개혁 이미지를 두루 갖춘 인물일 경우 그 대선 후보는 제3후보가 아니라 제1, 또는 제2후보가 될 수도 있다.

'비노' 또는 '반노' 세력으로선 '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다간 자신들이 소수 세력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마냥 나아갈 수 없다.

대선 패배,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손해 볼 게 별로 없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한 말이 있다. 확실한 야당 한 번 해 보는 게 대통령의 소망이라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크게 상심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확실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대선 4개월 만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대선과정에서 헤쳐모여식 통합세력과의 선명·개혁성 경쟁시 우위를 점한다면 타격을 줄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늘 마지막 패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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