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숨은 보석, 오르차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9

등록 2006.08.25 15:05수정 2006.08.25 17:42
0
원고료로 응원
쌀쌀한 바람이 몸을 파고들었다. 여행용 담요로 몸을 칭칭 감아도 새벽의 찬 바람을 막지 못했다. 내가 탄 릭샤는 푸른 새벽을 달리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오르차로 가는 중이었다. 실은 기차 안에서 잠을 자지 못했다. "정신 똑바로 챙겨!" 델리 역에서 나를 배웅해준 친구의 말대로 난 정신이 없을 만큼 열이 많이 나고 아팠다.

하지만 릭샤 밖으로 달려가는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담요 밖으로 눈만 내놓고 풍경을 따라갔다. 옅은 안개 속에 아담한 숲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른 새벽 숲에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다리를 건널 때 연못을 보았다. 분홍색 꽃들이 가득 피어 물 위에 비쳤다. 이 연못은 오르차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르차를 좋아하게 만들어버렸다.


왕소희
오르차엔 아름다운 궁전이 많았다. 궁전은 이른 아침과 저녁 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엔 햇볕이 너무나 강렬하여 하얀 하늘 속에 모든 것이 묻혀버렸다. 바람이 시작되는 곳, 궁전 꼭대기에서 오르차를 한 눈에 내려다보았다. 어디까지나 막힘없이 읽혀지는 지평선 아래로 숲이 펼쳐졌다. 그 사이 사이엔 오래된 성들이 솟아 있었다. 멀리 베트와 강이 오르차를 감싸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요정 나라의 지도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왕소희
왕소희
왕소희
왕소희
연둣빛 방. 이곳에서 보름을 지냈다. 창 밖으로 쉬시마할이 펼쳐지고 하얀 침대보가 씌워진 내 방이 좋았다. 이곳에서라면 벽에 붙어 며칠째 움직이지 않는 도마뱀처럼 끝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은 오렌지, 오렌지, 맨 밥으로 때우면서. 그런 깊은 잠에 빠진 나를 깨운 것은 그녀였다.

왕소희
난 속으로 그녀를 장화 신은 고양이라 불렀다. 옆방의 장화신은 고양이, 그녀는 일본 여자 사토코였다. 세상에! 그녀는 기다란 장화를 신고 인도까지 왔다. 고양이처럼 예쁘장한 얼굴에 날카로운 웃음을 웃는 그녀. 짜각 짜각 거리며 다가오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는 무서웠다. 늘 내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같이 놀자고 했다.

"메이! 메이!! 쾅쾅쾅"
숨을 죽이고 없는 척 해도 안 통했다.

"메이,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나와, 술 마시자!!" 어느 날 그녀는 한국 음식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장화 신은 고양이가 무서워 얼른 대접했다. 땀을 쩔쩔 흘리며 끓인 닭도리탕은 너무 맛있었다.


왕소희
그녀는 1년에 몇 번 인도에 온다고 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단정하게 화장을 하고 매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는 사토코의 여행은 즐거워 보였다. 아무튼 그녀는 이 거친 인도 거리를 아담한 여행용 가방을 끌고 장화를 신고 걸으며 즐기고 있었다.

왕소희
왕소희
며칠 후 장화 신은 고양이가 떠났다. 그 후 난 혼자 오르차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제 오르차에 모르는 곳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오르차를 떠나지 못했다. 이곳에서 진정으로 숨겨진 보물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왕소희 기자는 지난 해 8월말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왕소희 기자는 지난 해 8월말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의대 증원 이유, 속내 드러낸 윤 대통령 발언 의대 증원 이유, 속내 드러낸 윤 대통령 발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