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외로움, 다람살라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8

등록 2006.08.22 15:37수정 2006.08.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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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다. 티베트 순례자들이 남걀 사원 주변에서 코라(순례길)를 돌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 봐둔 벼랑 쪽으로 내려갔다. 구름에 휩싸여 하늘 위의 라퓨타 같은 이곳. 험한 북인도를 여행하고 지친 몸으로 도착한 다람살라는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구름 구멍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아침으로 사온 감자 모모(티베트식 만두)를 꺼냈다. 뜨겁고 쫄깃한 모모는 맛있다. 모모 한 개를 먹고 나자 눈물이 났다. 얼른 울었다. 감자 모모가 아주 맛있어서 오래 울 수가 없었다. 한 개 먹고 울고 한 개 먹고 또 울고.

모모는 총 다섯 개. 나는 혼자가 되었다. 다람살라에서.

왕소희
"안녕! 좋은 여행 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 빗속에서 떠나버렸다. 정말이지 남아있는 것은 떠나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왕소희
'혼자라도 잘해보자!' 다짐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탱화(불교화)를 배우기로 했다. 화실은 손바닥만 한 집이었다. 그래도 문밖에 온통 푸른 산과 하늘이 가득 찬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열심히 배울게요. 선생님."

비가 엄청 많이 오던 첫날 탱화 선생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집을 떠나버렸다. 약속을 어기고.


왕소희
'이번에 잘해보자!' 다시 다짐했다. 열흘간의 침묵을 맹세하고 비파사나 명상센터에 들어갔다.

그곳에선 하루에 한 끼 밥을 주었다. 각자 설거지를 해야 해서 늘어진 몸으로 그릇을 씻고 있었다. 그때 설거지 통 옆에서 까만 벌레 같은 게 움직였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는데 센터 선생님이 날 붙잡았다.

"전갈이야. 조심해!"

물리면 죽는다는 전갈! 머릿속에서 톡 하고 평상심이 부러졌다. 며칠 뒤 명상을 하고 있는데 현기증이 났다. '아…, 어지러워. 밥을 못 먹어서 그런가?'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소리를 쳤다.

"모두 밖으로 나가!! 빨리!"

그건 파키스탄 대지진이었다. 하늘까지 솟은 삼나무들과 온 땅이 흔들렸다. 처음 겪어본 지진은 너무 무서웠다. 평상심은 와장창 깨지고 나는 마음의 평화를 구하지 못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에 나는 너무 나약한 것일까?

왕소희
'괜찮아, 잘 될 거야. 이번엔' 억지로 다짐해 보았다.

'티베트 요리를 배워 보자!'

우리와 입맛도 얼굴도 비슷한 티베트는 마음으로 정이 가는 나라였다. 강습 첫날. 요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갑자기 국자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티베트를 탈출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왔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이곳 다람살라까지 오기 위해서.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은 까맣게 멍이 들었다.

어렵사리 탈출한 뒤 우연히 티베트에 남아있던 동생을 만났었다. 뛸 듯이 기뻤지만 그의 동생은 선생님의 멱살을 잡았다.

"넌 이제 내 형이 아니야."

동생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혼자서 인도로 간 형을 용서하지 못했다. 가슴 아픈 삶이었다.

요리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강습생인 중년의 여인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실은 어머니와 얼굴이 비슷한 그녀를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티베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선생님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왕소희
여행을 하면 무조건 즐거우리라는 것은 나의 단순함 때문이었다. 나는 지치고 외로워서 집 안에 있기로 했다. 문밖으로 무지개가 뜨고 구름이 몰려갔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첫 단계는 외로움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필요했다. 비 오는 다람살라를 떠나고 싶었다.

왕소희

덧붙이는 글 | 왕소희 기자는 지난 해 8월말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왕소희 기자는 지난 해 8월말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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