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70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9.07 16:41수정 2006.09.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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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사이도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곧 그들의 태도가 하나 둘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며 땅을 치는 사이도가 있는가 하면 돌을 들어 다른 돌에 부딪혀 장단을 맞추는 사이도도 있었다. 어떤 사이도는 발을 굴리기도 했다. 곧 그들의 장단은 ‘찬양’의 경쾌한 리듬과 점점 멋들어지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놀랍군!


마침내 짐리림 마저도 사이도들이 음악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찬양’의 중반부에 들어서 사이도들이 그 뜻을 알리 없는 하쉬의 언어로 된 가사가 울려 퍼지자 그들을 놀랍게도 일제히 ‘우어어’하는 소리를 질러대었다.

-오오!

짐리림은 놀라움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이도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눈이 안 보이는 그로서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찬양’마저 다 끝나가자 아누는 좀 더 대담한 시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생존키트에는 조그마한 악기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하쉬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룰 줄 아는 ‘판’이라는 악기였다. 짐리림은 판을 꺼내어 즉석에서 ‘별 속의 사랑’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조금은 우울한 곡이었지만 짐리림이 가장 자신 있게 불 수 있는 곳이었다.

-니 니르르 니니 미르르 니니니 르......

‘별 속의 사랑’은 짐리림도 좋아하는 곡이었다. 낯선 별에서 눈이 멀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짐리림은 감상에 젖어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쉬움 남기고 떠나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 작은 기억칩에 담긴 너의 모습은 / 이젠 안녕 / 나 떠나면 반드시 전해 / 마지막 추억의 홀로그램 / 당신을 잊기 위해 매몰차게 했던 말 / 모두다 용서해줘 / 긴 잠에 빠지기 전에 / 다시 한번 저 별을 바라봐 / 이 잠이 영원히 계속 될지라도 그대만을 꿈꿀래.

짐리림은 마음 한 구석에서 뭉클하고 감정이 솟구쳐 올라 더욱 애절하게 목을 놓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사이도들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있다가 마침내 노래가 끝나자 자신들끼리 무엇인가를 수군거렸다. 아누는 그런 사이도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직 침울함에 젖어있는 짐리림에게로 다가가 슬쩍 말했다.


-저것들, 분명 의사소통이 되는 모양인데? 자기들끼리 뭔가 의논을 하는 것 같네.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겠지.

잠시나마 감상에 젖은 모습을 아누에게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짐리림은 퉁명스럽게 되받아친 후 손을 내밀어 아누의 팔을 덥석 잡았다.

-저것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 어수선할 때를 틈타 여기를 뜨자.

아누는 짐리림의 손을 고이 떨쳤다. 가이다의 생물을 통해 다른 생물체의 환경을 빼앗는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보더아를 비롯한 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누가 바라는 바였고 이를 위해서는 눈앞의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아누는 나름대로 사이도들을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이는 막막한 계획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바로 음악으로서 그들을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눈앞에 큰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아누는 판을 꺼내어 다음 곡을 생각했지만 사이도들은 자신들끼리의 의논을 끝냈는지 갑자기 아누와 짐리림에게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야? 무슨 일인가?

불안해진 짐리림이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누는 상황을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사이도들이 둘레를 빙 둘러싸더니 그 중 하나가 기다란 나뭇가지를 들어 아누와 짐리림을 툭툭 찌르기 시작했다.

-이 놈들! 우리를 결국 해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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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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