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깨감나무'

[달내일기 55] 우열을 가리는 것만 능사일까

등록 2006.09.11 12:17수정 2006.09.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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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휑뎅그렁하게 그루터기만 남은 깨감나무

휑뎅그렁하게 그루터기만 남은 깨감나무 ⓒ 정판수

어제 언덕에 심은 호박을 따러 갔다가 발을 멈추었다. 작년에 잘라버린 깨감나무 그루터기의 휑뎅그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년 집 지을 때 그 용도를 몰라 망설이자 일꾼 한 사람이 "이것 아무 쓸모없는 거요"하는 말과 밭 아래를 가로막아 마을을 내려다보는 데 지장 있어서 그냥 자르게 했다. 그게 지금은 얼마나 후회되는지.


깨감나무는 표준어로 '고욤나무'라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땡감나무'라 하지만 깨처럼 작은 감이 열린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 더 정겨워 이 이름을 쓴다. 깨감나무는 그 이름 속에 '감'이 들어 있으므로 감이 열리긴 한다. 하지만 그 감은 너무나 적고, 익어도 맛이 없고, 또 씨가 많아 먹기 위해 키우는 집은 없다. 간혹 술을 담그는데 사용하는 집이 있다고 하나 그것도 극소수일 뿐.

그런데 달내마을에는 깨감나무가 많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옛날에는 집집마다 열댓 그루씩 다 심었다는데, 이제 집 가까이 있는 나무는 다 잘라버려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전에 살던 산동네로 가면 아직도 많이 있다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에 꽤 궁금하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나무를 줄줄이 심어놓은 까닭을. 나중에 깨감나무를 심은 까닭이 깨감을 따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감나무와 접붙이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의문이 풀렸지만.

깨감나무는 일반 감나무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대신에 단감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더디다. 이 둘을 접붙임으로써 빨리 자라면서 단감이 열리는 나무로 바뀌는 것이다. 또 거기에 맺히는 감은 순수 단감나무에서 열리는 감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니….

두 종류 나무의 문제점이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서로의 결점을 보완한 것이다. 이런 경우가 깨감나무 말고 다른 과일에도 적용되는 경우를 들은 적 있다. 대부분의 접붙이는 과실수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훨씬 빨리 더 나은 형태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a 마을에게 몇 안 남은 깨감나무

마을에게 몇 안 남은 깨감나무 ⓒ 정판수

신임 교육부장관 내정자가 학자일 때 쓴 논문 속에 평준화를 반대하는 내용이 있었고, 또 요즘 들어 평준화 지역에선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비평준화로 만들려는 여론이 이는 지역도 있다 한다. 그리고 비평준화로 이어지기 전단계로 우열반 편성을 지시한 지역교육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우열반 편성이든 고교의 비평준화든 그 목적은 우수한 아이들을 열등한 아이들과 분리시키는 데 있다. 언뜻 보면 우수한 애들은 우수한 애들끼리 공부시키고, 열등한 애는 열등한 애들끼리 공부시키면 함께 두었을 때보다 오히려 학습 효과가 우수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가 근무하는 학교법인에서 운영하는 학교 중에 자립형사립고가 있다. 중학교 전교 10등 이내의 우수한 아이들만 모아놓은 자랑스런(?)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에게서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애들이 공부 하나는 잘하지만 인간성은 참으로 형편없다는 거였다. 부모님도, 학부모도, 사회도 오직 저를 위해 존재하는 양 저 자신만 알지 주변을 알지 못한다는 것. 이는 거기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 면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는데 거기에도 하위권이 있다. 하위권에 속하는 아이들은 일반고등학교 애들보다 조금 나을 뿐 성적이 매우 뒤처진다는 거였다. 중학교에서는 전교 10등 이내였던 아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낸다는 것. 결국 극소수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대부분 우수한 성적의 아이들이 평범한 성적의 아이로 처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인성교육이란 말도 나왔지 않은가. 그 말은 그냥 교육학 서적에 나오는 단어로만 그치지 않는다. 만약 공부만 가르친다면 학교란 이름보다 학원이란 이름이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선생님에게서만 모든 걸 배우는 게 아니다. 친구에게서 배우는 게 어쩌면 더 많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친구는 꼭 성적이 우수한 아이만이 아니다. 성적만 뒤떨어질 뿐 다른 면에서는 성적우수생보다 오히려 더 나은 면이 많은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인간성에서, 감수성에서, 애국애족심에서,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에서 등등. 서로가 부족한 걸 보면서 채워가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깨감나무는 결코 쓸모없는 나무가 아니다.
성적이 뒤떨어지는 아이가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듯이.
그래서 나는 이제 깨감나무를 하등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으련다.
단감나무만 감나무라고 절대 말하지 않으련다.
깨감나무든 단감나무든 홀로 있으면 빈약하다.
그 빈약함은 서로 함께 붙어있음으로써 채워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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