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소견발표를 듣고 있는 청중들고기복
한 명의 후보가 소견발표를 마치자, 좌중에 앉아 있던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 발언 기회를 줄 것을 요구하였다. 사회를 보던 친구가 그 요구를 무시하고 진행하려 하자, 손을 들었던 회원이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지난 회기 총무를 맡았던 '아구스'였다. 결국 아구스에게 잠시 동안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구스는 본국에서 지방지 기자 생활을 했었는데, 시시비비를 잘 가리는 친구다.
"우리 공동체 식구가 1300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고작 100여 명이 앉아 있습니다. 총회가 되려면 최소한 그 절반이 참석하거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선 후보자들의 소견을 듣고, 일주일간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하며, 회원들의 총회 참석을 독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절차상 문제도 없고, 많은 회원들의 의견도 반영된 투표가 될 것입니다."
아구스의 입장은 총회 성원이 되지 않으니, 다음 주로 미루고, 그동안 후보들로 하여금 선거운동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시오'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회를 보던 친구가 마이크를 돌려받더니, 회칙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자는 소리는 않고, "힘들게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그대로 진행할까요? 다음 주에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좌중은 대부분 "이 자리에서 합시다"로 답했다. 평상시 같으면 한마디씩 거들었을 법한 친구들도 입을 다물었다. 아구스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자가 바람을 잡아버려서인지 법대로 하자는 아구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구스의 말대로 총회 성원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임원을 선출한다면 선거가 끝난 후 누군가가 시비를 걸거나 공동체간의 불화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진행이었다. 하지만 굳이 규정을 시비 삼아 뭐하겠느냐는 태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외국인으로서도 아구스의 지적이 옳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투표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는지 회의 진행에 불만을 표하며 몇몇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투표결과는 후보 간 격차가 크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대표가 된 후보는 다행히 선거에 나온 후보들을 감사와 총무로 추천하여 선거 과정의 잡음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