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사람들

달내일기(56)-시골사람들의 정

등록 2006.09.12 14:24수정 2006.09.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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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개들이 하도 요란하게 짖기에 현관문을 열어보았더니 다래 한 소쿠리와 산초 한 소쿠리가 있었다. 누가 이런 것을 갖다놓았는가 하여 주인공을 찾았더니 이미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재빨리 언덕 아래로 눈을 돌리니 의성댁 할머니의 뒷모습이 잡혔다. 분명히 그 할머니가 갖다 놓은 것이리라.


의성댁에서 준 다래
의성댁에서 준 다래정판수
어제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려 아내가 받았다. 대화 도중 잠시 전화기를 막고는 내게 의견을 물었다. ‘의성댁 할머니가 다래를 좀 땄는데 직장에 가 팔아줄 수 없느냐고?’ 물론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뒤 다래를 갖고 왔는데 스무 되나 되었다.

이곳 마을 이름이 ‘달내마을’인 까닭은 ‘달(月) 그림자가 시냇물(川)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지기도 했지만, 달리 다래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하여 ‘다랫골’이라고도 한다. 이름처럼 다래가 많이 열리는지 할머니들이 산에 가 따 갖고 오는 양은 꽤 많았다. 그러나 그걸 따기 위해 들이는 공이란!

길가나 길에 가까운 야산에는 이미 외지인들이 하도 드나들어 없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야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워낙 우거져 걸음을 옮기기도 힘든 곳이라 했다. 들어가기만 하면 충분한 양을 따는데 문제는 그걸 들고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직접 보진 않아도 길도 나 있지 않은 비탈을 할머니들이 보따리에 담아 이고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의성댁에서 준 산초
의성댁에서 준 산초정판수
의성댁 할머니는 한 되에 4000원씩 받으면 된다고 했다. 사천 원이라니! ‘깎이 한 되’가 아니라 ‘고봉 한 되’를. 하도 싼 것 같아 되물었더니 시장에 내놓는 가격이 그렇다는 거였다. 따느라 들인 공을 알기에 더 올려 팔 수 있다고 했더니 그대로만 받아달라고 했다. 공(空)으로 얻은 것인데 너무 욕심을 내면 탈이 난다면서.

직장에 가서 말을 던지기 무섭게 다 팔렸다. 어떤 이는 다섯 되를 사기도 했다. 다섯 되라 해도 돈으로야 고작 이만 원. 스무 되 다 팔아 할머니께 갖다 드린 돈은 8만원. 그걸 따기 위해 며칠을 산 속을 헤맸을 것이다. 그런 걸 팔아주었다고 두 되나 되는 걸 그저 주다니! 뿐인가, 산초까지 한 소쿠리를 주다니!


어제는 산초도 땄다는 얘기를 안 했는데 아마도 팔 만큼의 분량이 아니라서 그냥 우리더러 먹으라고 갖고 온 모양이었다. 전화를 했다. 다래든 산초든 언제라도 다 팔아줄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그리고 다음에는 절대로 우리 걸 챙겨오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우째 사램이 그럴 수 있능교?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제.”


‘은혜는 무슨…’ 하며 도시 사람들에게 완전 무공해 야생과일을 소개해 주는 것만 해도 기쁘니까 다시는 은혜란 말을 하지 말라 하자, ‘우째 사램이…’ 하며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구어댁에서 준 호박
구어댁에서 준 호박정판수
그저께 저녁엔 구어 어른 댁에서 호박 세 개를 갖다 주었다. 며칠 전 어른께서 대학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일이 있어 출근하는 길에 차를 태워줬는데 그 보답으로 갖고 온 모양이었다. 달리 애쓴 것도 아니니(대학병원은 출근하는 길목에 있다) 마음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갖다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곳 마을 사람들을 좀 도와주고 싶어도 은근히 겁(?)이 난다. 도운 것 이상으로 더 좋은 걸 갖다 주기에. 아니 어쩌면 내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마을 어른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다.

도움을 줘서 보답을 받은 것뿐만 아니다.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는데도 마을 어른들은 남는 게 있으면 상추랑, 얼갈이배추랑, 열무랑, 미나리랑 마구 갖다 준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분들은 그냥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한 마을에 함께 사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시골에는 아직도 이렇게 정이 남아 있다. 조그만 도움에도 고마워하는 정이 아낌없이 베풀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 시골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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