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장' 한영수의 아내 송은영(44)은 내 여동생이다.송성영
내가 두 사람의 결혼을 환영한 가장 큰 이유는 한영수가 송은영을 무지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녀가 만나 사는 데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한영수와 송은영은 결혼하기 전까지, 흔치 않은 10년이 넘는 연애 기간을 거쳤습니다. 둘이 교제를 시작하던 시절, 송은영이 한동안 한영수를 만나주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키에 까무잡잡한 외모의 한영수가 볼품없는 남자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자신보다 한 살 더 어렸으니 그게 좀 부담이 됐던 모양입니다. 영화배우 같은 남자와 사귀고 싶어하는 스물두어 살 무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아니, 또 모르죠. 내가 모르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어쨌든 '사랑하는 은영씨'가 만나 주지 않자 일편단심 영수는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던져놓고 탄광촌을 찾아들기도 했답니다.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었냐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외모나 나이 따위를 초월하는 영수씨의 진실된 사랑을 느끼게 거죠.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세상만사 다 포기한 남자를 보면서 '저 남자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는구나', 뭐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한영수는 그 후로도 '사랑하는 여자 은영씨'를 위해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나는 이미 여동생에 대해 일편단심인 한영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흔쾌히 찬성표를 던졌던 것입니다.
한 과장, 정말 잘나가는 사람이었죠
마찬가지로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역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흔히들 요즘처럼 직장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누군가 뜬금없이 사표를 던지면 뭔 사고를 쳤겠지, 아니면 "더럽고 치사해서…" "한창 잘 나가던 사람이…" 어쩌구 저쩌구들 말들이 많습니다.
한 과장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한 과장이야말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사표를 내기 전 팀장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몇 개월만 지나면 부장급이나 다름없다는 팀장으로 승진할 호기를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과장은 고지식할 정도로 부당한 일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짜 석유가 판칠 때는 라디오는 물론이고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 석유품질에 관련된 코멘트를 할 정도로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사표를 내기 바로 전까지 '근로자 대표 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직장 동료로부터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사표를 던졌으니 직장동료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을 부당하게 괴롭히던 '계급 높은 간부'들까지 아쉬움을 표시하고 사표를 말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 그는 아예 휴대전화기이며 집 전화까지 단절하고 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불어 닥칠 생활고를 별 걱정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여동생은 '허허실실' 남편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능력있는 남편의 사표를 아쉬워하는 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다는 것입니다.
15년 주말부부 생활, 드디어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