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박물관 운 제일 없는 사나이

[자티의 중국여행길라잡이] 안휘 합비에 가다

등록 2006.09.23 18:54수정 2006.09.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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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8. 아마 화요일. 대체로 맑음. 구강(九江) 가는 중 살짝 비.

제일 윗칸인 상포인 탓에 에어컨 찬바람을 그대로 받는 바람에 이불을 머리 위까지 쓰고 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컬컬해진 걸 봐서는... 더 잘 건데 옆 칸에서 액정 TV 소리를 너무 올리는 바람에 시끄러워서 포기.

복도쪽 간이의자에 앉아 차창 밖을 구경했다. 쾌속인 K열차를 언제 탔던가, 기억이 안 나지만 액정 TV가 딱딱한 침대칸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비닐 포장도 제대로 안 벗겨진 걸 봐서는 올해 처음 설치된 건가? 덕분에 승객들은 무료함을 달랠 수 있게 됐지만, 대화를 잃어 버리고 TV 보기에 정신없다. 진보나 발달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화중(華中) 지역이 먹여 살린다는 말처럼, 강소, 절강, 안휘, 상해, 호남, 호북, 강서성은 넓은 평야지대로 유명하다. 이 K열차는 강소성 교통 요충지인 서주(徐州)를 지나, 안휘성 성도인 합비(合肥)로 가는 중이다. 몇 시간째 거의 지평선만 보이는 넓은 평야를 보니 넓기도 넓은 중국땅이 부럽다.

합비는 <삼국지>의 주요 무대이고, 장료가 800 병사로 오나라 10만을 물리쳤다는 곳이지만, 소설은 소설이고 역사는 역사인 법. 중국식 과장법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넘처 흐르는 소설이 또 <삼국지> 아니던가! 삼국지 여행은 나중에 따로 모아서 할 예정이라 원래 동선에는 없던 곳이었다. 내가 며칠 있었던 청도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유방이라는 도시에서 구강 가는 기차가 매진이라 표가 있는 제일 가까운(?) 도시를 택한 것이 바로 합비다. 겸사 겸사 안휘성 박물관도 볼겸.

지도를 사서 보니 크게 보고 싶은 곳이 없다. 눈길을 끈 건 이홍장(李鴻章) 고거인데... 어지러웠던 청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매번 실수인지 실패인지로 끝낸 이 위인이 살던 옛집은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근처 버스터미널에서 시간 좀 보고, 가볍게 점심. 점심으로는 소롱포(小籠包, 小笼包, xiǎolóngbāo, 작은 고기만두). 느끼하다. 10개에 3위안(元)이라 우리돈 500원. 이쯤해서 대충 때울 수도 있지만 배나온 기마민족이 허술하게 먹을 수는 없는 법. 나온 배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근처 무슬림이 하는 청진(淸眞, 清真, Qīngzhēn, 이슬람) 식당으로 가서 량면(凉面, liángmiàn)으로 보충. 맛있기로 유명한 산서(山西) 식초 좀 뿌리고, 고추가루 볶은 것도 넣고 해서 후다닥 한 그릇 비웠다. 우리나라에 비빔국수, 냉면, 쫄면 등등 차게한 면 요리가 많은 편이지만 중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물론 우리 기준으로는 미직지근하다. 유방에서 한국어 선생할 때 인근 조선 동포 분이 하는 연변 요리집에서 학생들에게 연변냉면 몇 번 사줬는데 거의 다 남긴 이유는 중국 특히 내가 있던 산동쪽은 찬 음식, 음료에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안휘성(安徽省)도 많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그 중에서 세계문화유산인 '황산'만 유명하다. 중국 4대 불교명산에 들어가는, 우리에게는 김교각 스님 입적지로 유명한 '구화산(九華山)'도 있고, 역시 중국 4대 도교 명산인 '제운산(齊雲山)', 세계문화유산보다는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로 유명한 명청고가인 '서체_굉촌(西遞_宏村)'도 황산에서 두시간 거리지만 이상할 만큼 여행자들이 잘 안 들린다. 또 황산에서 가까운 중국인들이 잘가는 '천도호(千島湖)'도 있지만 나 같은 여행객이 쉽게 못가는 이유는 몰라서보다는 동선이 매끄럽지 않아서, 즉 교통편이 불편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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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관광버스터미날, 구화산가실분은 참조하시길. 구화산은 황산에서 갈수도 있읍니다. ⓒ 최광식

합비역 근처의 또 다른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합비는 여기 말고도 버스터미널이 5~6개 더 있다. 구강행은 9:30, 15:55 두 대뿐이다. 현재 시간은 13:15분. 흠! 어떻게 할까? 하루 정도는 묵어 가려고 햇는데. 그냥 박물관만 보고 가기로 결정. 5시간 걸린다는 데 표값이 80위안이다. 산동보다는 싼 편이지만, 중국 평균으로는 비싼 편이다. 시간 탓에 택시로 이동.

잉? 중국 내 박물관에만 가면 종종 안 좋은 느낌이 드는데 그 경우 그 느낌이 거의 다 맞는다. 뭐냐? 이 기분은... 아마 입구에서 박물관까지 한 150m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아무도 없기 때문인가? 불길한 기분에 확인 도장이라도 찍듯 저 멀리 박물관 정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미리 앞선 짜증과 불볕더위와 불어난 뱃살에 걸맞게 흐르는 땀을 훔치며 간 결과 '내부 수리중'이다. 10월에나 다시 문 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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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성 박물관 ⓒ 최광식

전세계 여행객 중에서, 아니 전세계 중국여행자들 중에서 박물관운이 제일 없는 사람일 거다. 내가..

산동 청도박물관에 갔을 때는 시 동쪽으로 옮겼다고 해서 3년 후에 겨우 봤고
북경 군사박물관도 아마 내부수리중었나 왔다갔다 헤매다만 왔고
호북 의창박물관도 내부수리중이라 못 봤고
호남 악양박물관은 아무런 안내판도 없이 문 닫혀 있었고
산동 제남의 산동성박물관은 안내판은 있었다. 10월에 문 연다는
감숙 란주의 감숙성박물관은 안내문도 없었으나 개축인지 증축인지 온통 공사판이었고
신강 우루무치의 신강성박물관은 수리중인데 역시 안내문도 안내판도 없어서 기웃대다 겨우 신축 중인 건물 뒷켠에 있는 옛 건물에서 관람


뭐,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정부나 지방정부가 박물관에다 돈을 쓸 여유가 생길 정도의 빠른 경제 발전 탓이겠지만... '안내문'이든 '안내판'이든 제발 진입하는 입구에 달아 놓을 정도의 서비스 정신은 경제발전을 못 따라가는 듯싶다. A4 용지 달랑 한 장 걸어놓고 박물관까지 들어가야만 확인하게 해 놓은 것은 중국 공통이다.

하여간 박물관 가는 족족, 꼭 성수기인 방학 무렵에 내부수리 중인 이유인지 무신경인지는 꼭좀 알고 싶다.

중국 내 박물관이 2000개가 넘는다고 자랑은 하지만 가끔은 그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스운 생각이 든다. 재래식인 푸세식 화장실이라 상큼하지도 않은 냄새가 박물관전체에 배인 듯한 카스박물관, 1층에 뱀 약 팔고 있던(것도 단체여행객대상으로) 개봉박물관... 성(省)급 박물관이라면 몰라도 그 하위 박물관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산동 청도나 유방 같은 곳은 시급이지만 왠만한 성급 수준인 것도 사실이지만...

찾아온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미안함도 없고, 어찌됐건 허탕친 건 사실이니까, 가장 기본적인 안내도 없고(입구는 아니지만 정문에 붙여 놨다고 하면 할말 없지만) 고속도로 진입전에 안내를 해야지 톨게이트에서 '진입 안됩니다'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사람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중국 역사나 유물을 만든 과거 중국인들에게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인들의 관리 상태를 볼때는 과분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이제야 제대로 역사유물 관리전시에 원할하게 돈이 돌정도로 경제발전이 궤도에 올라섰다고 할까.

그래도 괜찮았던 박물관 '북경' '상해' '서안(섬서성박물관)'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이랄까 자부심이랄까, 훌륭한 박물관인 것도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중국 유물의 백미는 대다수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는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데 인연이 아직 닿지 않아서 아직 본 적이 없다. 중국이 제국이었던 시절의 유물들은 황실에 다 모였고, 그 황실 유물들이 바로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모여 있는 것이다.

하여간 근처 중국 은행 가서 환전 좀 하고 맥도날드에서 얼음 넣은 콜라 한 잔. 대도시 탓인지 젊은 고객으로 만원이다. 중국 기준에서 정말 비싼 편인데도.

버스터미널로. 생수 한 병 냉장 시킨 거라고 메이커도 아닌 생수를 1.5위안 달랜다. 투덜투덜. 좌석번호가 29번이라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10명도 안된다. 흠! 뭐냐? 29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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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표문(检票门,jiǎnpiàomén)으로 가셔서 개찰하셔야 합니다. 1층(楼,lóu) 7번(号,hào)문으로 가시라는 뜻입니다. ⓒ 최광식

5시간 걸린다더니 4시간 20분 만에 도착. 구강에 가까워지니 가끔 산도 보인다. 거진 3시간 동안은 정말 드물게 산만 보인 넓은 평야지대. 부럽다. 이런 광활함이... 산지가 75%인 대한민국 사람이라 그런지 중국 평야만 보면 시원한 공간감으로 뼈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내리자마자 삐끼 아줌마들에게 포위 당했다. "나 삼 년 전에 왔었어"라는 막강무기로 전부 물리쳤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가서 '려산(廬山)'가는 시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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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 시외버스터미널 시간표 ⓒ 최광식

쾌찬(快餐, kuàicān, 중국식 패스트푸드)에서 맥주 2병 곁들여 대충 때우고 30위안짜리 방이라고 얼른 들어왔더니 에어컨도 없는 거야 당연하지만 TV도 없다. 보증금 70위안.

도시별로 느낌이 다 다른데, 바가지 엄청 씌울 거야 하는 인상을 준 도시는 '태산' '곡부' '황산' 그리고 '구강'이다. 삼사년전에 장강을 따라 구강까지 왔지만 2월이라 비도 오고 날씨가 하도 추워서 못봤던 '려산'을 드디어 내일 보게 된다. 이백(李白)이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이라고 읊었던 그 폭포를 본다. 내일...

오늘은 꿈에서 이태백이라도 만날지 모르겠다.

<7월 18일 사용경비 내역>
* 계산 편의를 위해 사사오입

ㅇ 이동비 : 없음
- 합비 > 구강 (시외버스, 80위안)

ㅇ 교통비 :
택시 : 합비역 > 박물관(10위안)
삼륜 : 박물관근처 > 합비역 (5위안)

ㅇ 숙박비 : 30위안

ㅇ 식 비 :
-아침 : 건너뜀
-점심 : 소롱포(3위안), 량면(4위안)
-저녁 : 쾌찬(5위안)

ㅇ 관람비 : 없음

ㅇ 잡 비 : 11위안
합비지도(2.5위안), 물 두병(1.5위안, 2위안), 콜라 한 잔(2.5위안), 맥주 2병(한 병 2위안, 4위안)

ㅇ 총 계 : 150위안

덧붙이는 글 | ㅇ이 기사는 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여행나라(http://ichina21.hani.co.kr/)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ㅇ 중국어 발음과 해석은 네이버사전(http://cndic.naver.com/)를 참조했습니다. 
ㅇ 중국 1위안(元)은 2006년 8월기준으로 약 120~130 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ㅇ이 기사는 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여행나라(http://ichina21.hani.co.kr/)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ㅇ 중국어 발음과 해석은 네이버사전(http://cndic.naver.com/)를 참조했습니다. 
ㅇ 중국 1위안(元)은 2006년 8월기준으로 약 120~130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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