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머무는 '한라산 손자'

[제주의 오름기행 22〕생태계의 보물창고, 손자봉

등록 2006.09.27 16:49수정 2006.09.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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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오름은 생태계의 보물창고입니다.
손지오름은 생태계의 보물창고입니다.김강임
오름에 피어나는 야생화의 생명력

요즘 제주 오름 중턱엔 가을 야생화가 지천이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뿌리내리는 끈질긴 생명. 야생화는 제주인처럼 강인한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야생화가 서식하기 알맞은 곳은 오름이다. 아직 생태계가 오염되지 않아서일까. 스코리아가 형성된 오름엔 그 환경에 맞는 야생화가 피어나고, 습지가 많은 오름엔 습지에 알맞은 야생화가 피어난다. 오름 중턱에서 사계절 불어오는 강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꽃. 그래서 사람들은 야생화를 '민중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쑥부쟁이, 강아지풀, 이질꽃 등이 지천을 이룬 손지오름.
쑥부쟁이, 강아지풀, 이질꽃 등이 지천을 이룬 손지오름.김강임
오름을 덮고 있는 잡초의 매력

9월의 마지막 휴일,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손자봉(손지오름)에 올랐다. 손자봉 가는 길은 잡초로 우거져 있었다. 잡초는 아무 쓸모없는 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주 오름에서 자라는 잡초는 나름대로 특별하다.

오름 중턱에서 방목하는 마소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생물이 서식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잡초에 붙어사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잡초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 제주 오름은 자연을 잉태하는 생명의 보금자리다.

쑥부쟁이와 함께 어우러진 강아지풀, 보랏빛 엉겅퀴 속에서 가을 잠에 빠져 있는 풀벌레, 가을 동산이 운동장인양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여치 등 손지오름에선 온갖 생물이 살아 숨 쉰다. 생태계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보니 생명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저마다 환경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적응력에 감탄할 뿐이다.

지난 여름 햇볕을 먹고 쑥쑥 자란 잡초들은 어느새 내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그렇다보니 수풀을 헤치며 등산로를 만들어야 했다.


분화구에 서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용눈이오름이 한 눈에 보인다.
분화구에 서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용눈이오름이 한 눈에 보인다.김강임
풍경의 꿈틀거림

표고 255m인 손자봉 중턱에 서자, 사방에서 불어오는 풀섶 향기가 가을을 녹인다. 제주 오름을 오르는 묘미는 오름 중턱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한라산 중턱에서 보는 풍경보다 아름답다. 창공과 맞닿은 잔잔한 바다 위에서 성산일출봉과 우도봉이 꿈틀거렸다.

손지오름 남쪽에 있는 알오름 주변에서 제주 특유의 장묘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지오름 남쪽에 있는 알오름 주변에서 제주 특유의 장묘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김강임
손자봉 중턱에 자리 잡은 알오름 주변에 이날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조상의 묘소를 정성스레 단장하는 후손들. 묘소의 풀을 깎고 깨끗이 단장하는 후손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오름에 제주 특유의 장묘문화인 산담(묘소 주변에 경계선으로 만든 돌담)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죽어서도 오름 중턱에 묻히는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삶의 전부다.

봉우리에 내려앉은 파란 하늘이 가을을 물들인다.
봉우리에 내려앉은 파란 하늘이 가을을 물들인다.김강임
손자봉 분화구를 따라가 본다. 화구 봉우리 끝에 파란 하늘이 내려앉았다. 계절이 익어갈수록 더욱 파래지는 가을 하늘. 우리 마음이 가을 하늘만큼 파래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분화구를 덮고 있는 띠풀.
분화구를 덮고 있는 띠풀.김강임
생태계의 보물 창고

분화구를 덮고 있는 띠풀(제주에서는 새라 부르기도 한다)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제주 사람들에게 띠풀은 또 하나의 자원이다. 한때는 초가지붕을 이는 재료로 쓰이지 않았던가?

그림처럼 떠 있는 용눈이오름.
그림처럼 떠 있는 용눈이오름.김강임
억새꽃 뒤로 다랑쉬오름도 보인다.
억새꽃 뒤로 다랑쉬오름도 보인다.김강임
바라보는 곳마다 모양새가 다른 제주 오름. 손자봉에서 보는 용눈이오름의 자태와 억새 뒤에서 알몸을 드러낸 다랑쉬오름이 또 다른 가을 풍경으로 와 닿는다. 제주 오름은 변덕쟁이처럼 요술을 부린다고나 할까.

크고 작은 봉우리가 어깨를 겨룬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어깨를 겨룬다.김강임
한라산과 닮아서, 한라산보다 작아서, 한라산 손자라 불리는 손지오름. 억새와 띠풀, 갖가지 야생화가 숲을 이룬 손지오름은 가을의 요람이었다.

화구를 따라 이어진 삼나무.
화구를 따라 이어진 삼나무.김강임
손자봉 등산로를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매기는 했지만, 생태계의 보물창고인 손지오름 분화구에 섰을 때 꿈틀거리는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손자봉

▲ 다랑쉬오름에서 본 손자봉

손자봉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다. 표고 255.8m, 비고 76m, 둘레 2251m, 면적 279,921㎡다.

손자봉은 타원형의 분화구(화구둘레 약 600m, 깊이 26m)로 동쪽 기슭에 원추형 알오름(도래오름)이 있고, 남쪽 기슭에 원추형의 아담한 알오름이 있는 복합형 화산체다.

'x'자 형태로 나눠진 사면엔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풀밭과 초지를 이루면서 산자고, 보라빛제비꽃, 노란솜양지꽃, 남산제비꽃 등이 식생하고 있다.

모양이 한라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작은 한라산'이라는 의미로 손지오름이라 불린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길 : 제주시-동부관광도로(번영로)- 대천동 사거리- 16번 도로(성산-수산으로 가는) 3km지점- 손지 오름. 1시간 정도 걸린다. 손지 오름에 오르는 데 20분정도, 둘레 600m인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길 : 제주시-동부관광도로(번영로)- 대천동 사거리- 16번 도로(성산-수산으로 가는) 3km지점- 손지 오름. 1시간 정도 걸린다. 손지 오름에 오르는 데 20분정도, 둘레 600m인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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