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8회

제노사이드

등록 2006.10.13 16:52수정 2006.10.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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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둑의 말에 남현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입력이라고요?”

남현수는 김건욱과 무와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굳어있기는 했지만 표정이 살아있는 그들이 과연 누군가의 조정을 받는 인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저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마르둑은 사이코메트리 증폭기를 남현수에게 건네어 주었다.

“그리고 이건 원하시는 데로 이쪽을 향해 조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결론을 보고 나면 더욱 솔직하게 모든 것을 얘기해 드리죠.”


남현수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중하면서도 간곡한 마르둑의 태도에 이미 눌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현수는 손에 들린 조그마한 사이코메트리 증폭기를 바라보았다. 두개의 조작 스위치가 있었는데 하나는 돌릴 수 있는 것이었고 하나는 눌릴 수 있는 것이었다.

남현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증폭기를 마르둑에게 겨누고서는 스위치를 꾹 눌렸다. 하얀빛이 마르둑의 주위를 휘감더니 놀랍게도 다시 남현수에게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빛이 마구잡이로 휘어 다시 자신의 몸을 휘감자 남현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남현수의 손에서 증폭기가 ‘툭’ 하고 떨어졌다.


-솟!

솟은 뒤에서 거칠게 자신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 손길에 놀라 손에 든 부싯돌을 툭 떨어트렸다. 뒤에서는 그차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솟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솟은 그차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몇 번의 밤낮이 오고갔는지 모를 수많은 나날을 솟과 수백의 사람들은 함께 거닐어 왔다. 싸움에 도움이 안 되는 여자와 어린아이, 병들고 늙은이들은 되도록이면 떼어놓고 왔음에도 그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도처에 숨어 있던 인간들이 그들을 따라나서는 것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러다보니 머릿수는 많아졌지만 자연히 식량을 조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애를 먹고 있었다. 운이 좋아 사냥감이 많은 곳에 도착해 식량을 확보했다고 해도 이동 중에 지니고 간 식량을 모조리 먹어 버리는 데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차가 멍하니 앉아 있는 솟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흔들며 기운을 북돋으려는 이유도 내일이면 그들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날이 사흘째에 접어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솟은 그 정도의 굶주림에 정신을 놓을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솟의 힘찬 대답에 그차는 마음을 놓고서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 주위에 늑대 떼가 와 있는 걸 본 이가 있다.

-늑대? 얼마나?

주위에 늑대가 와 있다면서 특유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차는 그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만큼 많다. 하지만 그 놈들이 모조리 자고 있으니 불을 지피고 돌과 몽둥이로 공격하면 그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솟은 그차의 제안에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 수가 비슷하다면 늑대는 결코 만만한 무리가 아니었고 자칫하다가는 도리어 그차의 무리들이 늑대의 밥이 될 수도 있었다.

-사영에게 물어보자.

사영은 무리를 이끄는 솟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그림으로서 솟의 결정을 확고하게 해준 적이 많았다. 물이 부족하여 큰 위기를 겪었을 때도 사영은 큰 원을 그리고서는 선을 그어 그들이 맑은 호수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인도해 준적도 있었다.

-사영은 지금 몸이 안 좋다. 지금 자고 있는데 깨워서 물어볼 여유는 없다. 늑대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끝을 뾰족하게 깍은 나무와 돌은 모두 마련해 두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영의 그림은 다소 기다려야 만이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어서 솟은 그차의 결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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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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