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자식들은 다녀갔을까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19] 느릿느릿 사는 할아버지

등록 2006.10.17 09:14수정 2006.10.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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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종병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콩다발에서는 허연 먼지가 일었다. 먼지사이로 백발의 할아버지 머리가 흔들린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불렀다.

"할아버지. 콩타작하시네요."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생면부지인 나를 "왔는가" 라며 반긴다.

웃는 모습이 그대로 바다다. 검은 눈동자마저 하얗게 변해버린 할아버지는 곁에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문을 여신다. 말끝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있다. 어디서 왔느냐 무얼 하러 왔느냐는 질문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세월의 흔적이 밭고랑처럼 패어 있는 주름진 얼굴 속에는 할아버지의 삶이 들어 있었다.

"자식들 주려고, 할멈이 20년 전에 갔어."
"잘 살아라 그랬지. 뭐,"


묻지도 않는 말을 하신다. 할아버지 63세에 할머니를 보내고 여지껏 혼자서 사신 모양이다. 콩다발을 무릎 앞에 놓고 병으로 몇 차례 두들기더니 콩깍지를 만지작거린다. 이제 됐나, 남아 있는 것들이 있나 확인하신다. 콩깍지를 손바닥에 놓고 다른 손으로 문지르며 확인하는 모습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지 않다.

옛날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주신다. 그냥 사진만 찍고 가려던 길을 멈추고 한참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콩타작을 하시면서 내게 하신 말씀 중 알아 들 수 있는 이야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흥겹게 이야기하신다. 가슴이 저며 온다.


이번 추석에 자식들에게 그 콩을 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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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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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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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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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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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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