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 역과 모스크바 행 001번 라씨야호 열차강병구
기차는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
대륙횡단 열차의 꿈, 호방한 성격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왕성한 내 호기심의 갈증을 조금씩 해소해주던 계몽사 <소년세계대백과> 같은 유의 책들엔 기차,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에 대한 이야기가 꼭 있었다.
내가 특별히 그 항목들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비행기로만 외국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차로도 외국을 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내가 체험해본 기차라는 교통수단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는 고작 500km도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기차를 타고 10시간이 훨씬 넘고, 심지어는 며칠씩 걸려 국경을 넘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꼭 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파리행 열차,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상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00년 남북의 대표들이 만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했을 때, 내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합의 내용은 '경의선 연결'이었다. 꿈으로만 생각하던, 파리행 열차가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
하지만 5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이 되기 어려워 보였다. 합의 당시 그 해 연말이면 연결공사는 마칠 수 있고, 늦어도 2001년 말에는 화물 이동부터 가능할 거라는 희망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저 희망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의 기대는 당분간 어렵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저 올해 3월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러시아로, 그래도 기차에 올라타 대륙횡단의 꿈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