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단순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책

[아가와 책 48] 차분한 그림 톤의 <나비잠>과 찢어 붙인 그림책 <삐쭉 빼쭉>

등록 2006.10.27 10:01수정 2006.10.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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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책을 고르면서 참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림이 너무 단순해서 과연 우리 아이가 잘 볼까 싶은 책이 의외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아이 아빠가 선물로 가지고 온 책 <나비잠>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바람에 아이 손에 들어오게 된 <삐쭉 빼쭉>은 엄마의 예상을 뒤엎고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아이와 동물 모습 교차 편집...<나비잠>


a 책 <나비잠>

책 <나비잠> ⓒ 사계절

엄마 눈으로 본 책 <나비잠>은 그림이 너무 흐릿하고 어른 취향이라서 아이가 보기에 별로일 것 같은 책이다. 옅은 갈색과 아이보리 톤의 차분한 그림은 파스텔로 그려져 어린아이의 시선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는 이 책을 참 좋아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첫 장면은 창 밖으로 별님이 내려앉고 아이가 앉아서 눈을 부비부비 비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눈을 비비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그려져 있는데 우리 아이가 졸려서 눈을 비비는 모습과 똑같다. 다음 장을 펼치면 '우리 아기 고양이 잠이 오나 봐' 라는 구절과 함께 눈을 비비며 엄마 품에 있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이 크게 나온다.

다음 장은 입을 크게 벌리고 '아아함' 하품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 다음에는 하마가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하는 게 나온다. 책은 이런 방식으로 아이 모습과 동물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 주어 독특하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 다음 장에서 엄마 원숭이 품에 안긴 아기 원숭이가 나오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튀는 느낌 하나 없이 베이지 색이 주를 이룬 그림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내용.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이 무척 좋은가 보다. 항상 잠자기 전에 읽어 달라고 집어 오는 책도 이것이고 주인공 아이를 손으로 짚어가며 뽀뽀를 날리는 것도 이 책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자기와 친근한 대상인 아기 모습이 나오고 좋아하는 동물들이 하나하나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주인공 아가와 동물들의 행동이 자기 자신의 행동과 똑같기까지 하니 아이 입장에선 얼마나 공감이 가는 책인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돌쟁이 아가에게도 동질감이란 것이 존재하나 보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소재로 눈높이 맞춘 <삐쭉 빼쭉>

a 책 <삐쭉빼쭉>

책 <삐쭉빼쭉> ⓒ 비룡소

비룡소의 '싫어 싫어' 시리즈 중 하나인 <삐쭉 빼쭉>은 워낙 출판된 지 오래되어 시리즈의 일부가 절판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비싼 아이들 책 중 가격이 하도 저렴하길래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에서였다. 엄마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책도 아이가 보지 않으면 허탕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싼 맛에 산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이 책은 우리 아이가 그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이제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 책의 한 구절을 얘기하면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을 찾아 올 정도가 되었겠는가.

이렇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지만 엄마가 보기엔 이상하게 어설픈 느낌이 든다. 종이를 찢어 붙인 콜라주 기법으로 아주 단순한 화보인데다가 내용 또한 강아지, 나무, 루루라는 한 아이가 삐쭉빼쭉한 털, 나뭇가지,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다는 매우 짧은 이야기다.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인지 종이 질도 좋지 못하고 인쇄 상태도 촌스럽기 그지없다. 책의 내용 전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삐쭉빼쭉 이게 뭐게?/ 우리집 정원 나무/ 우리집 누렁이/ 뒤엉킨 털실
우와 루루의 머리칼은 더 굉장하네 (뒤엉킨 머리를 가진 루루의 찡그린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정원사 아저씨가 싹둑싹둑/ 누렁이도 싹둑싹둑/ 털실은 동글동글 말아요
그럼, 루루는? (삐쭉빼쭉한 머리의 루루 뒷모습이 나온다)
루루도 싹둑싹둑/ 거울에 비친 저 예쁜 아이 누구게? (예쁘게 머리를 자르고 리본을 한 채 루루가 웃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세나 게이코는 육아 체험을 토대로 하여 엄마가 직접 쓰고 그린 유아용 생활 그림책 '싫어 싫어' 시리즈로 산케이 아동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머리 깎기, 당근, 잠자기 등을 소재로 하여 비록 싫어하는 일이지만 막상 하고 나면 멋지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내용을 책에 담았다.

아직 우리 아이는 어려서 한 번도 머리를 깎아준 적이 없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머리 자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이런 책을 읽혀 두면 좋겠다 싶어서 구입한 것인데 의외로 잘 본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의 '단순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글씨 오른쪽에는 찢어 붙인 그림이 있다. 그림은 너무도 단순하여 나무가 나오는 장면에는 연두색과 초록색 종이를 네모지게 잘라 붙인 나뭇잎 형상과 갈색 나무둥치가 전부다. 루루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만든 것처럼 검은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눈을 만들고 빨간 색종이로 입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단순한 모양을 좋아한다. 단순한 것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것보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는 만 10개월 정도부터 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참 많지만 아이의 다양한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 이렇게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책 한 권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림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반복적인 리듬감을 주면서 몇 안 되는 어휘로 구성되어 막 말을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평소 나무, 가위, 멍멍이(책에는 누렁이로 표현되어 있으나 아이에게 친밀한 느낌을 주기 위해 멍멍이로 바꾸어 읽어준다), '이게 뭐게?' 등의 단어에 익숙한 우리 아이에게는 책의 내용 귀에 쏙쏙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엄마 기준으로 보면 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들이 아이 눈에는 훌륭한 놀이감이 될 수도 있다. 가끔 대형 마트에서 보낸 전단지를 들여다보며 바나나와 사과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을 손으로 짚으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꼭 비싸고 질 좋은 책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엄마의 몫이리라.

나비잠 (보드북)

신혜은 지음, 장호 그림,
사계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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