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자들, 웡통허를 재조명하는 이유

청사공정(淸史工程), 부정적이던 서태후를 긍정적으로 재평가

등록 2006.10.30 09:15수정 2006.10.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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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은 훗날 통일한국과의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한국 내 일부의 인식은 중국의 역사공정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공정을 포함하여 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상·주 3대 공정, 당대공정(唐代工程), 청사공정(淸史工程), 민국공정(民國工程) 등의 역사공정(歷史工程)은 단순히 ‘영토 지키기’의 차원으로만 이해될 수는 없는 것들이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재인식을 바탕으로 미래의 새로운 나라를 열려는 중국인들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거기에는 한족과 소수민족을 아우른 새로운 통합국가를 건설하려는 그들의 의지도 담겨 있다. 그러므로 한국이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중국 역사공정의 일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전체 구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청사공정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웡통허(翁同和, 1830~1904년) 재조명 작업의 실태 및 의의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 주>


현재 중국에서는 청사공정과 관련하여 이미 100종 이상의 역사 서적이 발간되었다. 군기처 당안(檔案, 공문서)을 포함한 청대(淸代) 당안들도 이미 발간되었으며, 쉬에푸청(薛福成)이나 황쭌셴(黃遵憲, 황준헌) 등의 역사적 인물을 다룬 도서도 이미 출간되었거나 혹은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청사공정에 정통한 어느 중국인 역사학자의 말에 따르면,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중요한 작업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청말(淸末) 관료인 웡통허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다. 웡통허는 어떤 인물이며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준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쑤성(江蘇省) 창수현(常熟縣) 태생으로서 명문 거족 출신인 웡통허는 청나라 11대 황제인 광서제(재위 1874∼1908년)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대만·오키나와·조선 등에 대한 일본의 침공으로 동아시아가 요동을 치던 시절에 중국 황제의 스승으로서 권세를 누렸던 인물이다. 그가 역임한 직책은 형부상서·공부상서·호부상서(종1품)와 총리각국사무아문대신 등이다. 대체로 보아 장관급 정도의 지위를 누린 인물이다.

a 2004년 7월 23일자 CCTV 홈페이지. 웡통허에 관해 보도하고 있는 중국 언론.

2004년 7월 23일자 CCTV 홈페이지. 웡통허에 관해 보도하고 있는 중국 언론. ⓒ CCTV


웡통허는 청말의 정치개혁운동인 무술변법(1898년) 때에 컁유웨이(康有爲, 강유위) 등 한족 개혁파를 지원한 사실로도 잘 알려져 있다. 40살 된 재야 지식인인 캉유웨이를 광서제에게 비밀리에 추천한 사람이 바로 웡통허였던 것이다.

그런데 웡통허에게는 무술변법이 그 정치인생의 절정이었다. 100일 천하로 끝난 무술변법과 함께 그도 정치인생을 마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웡통허에 대한 종래의 평가는 무술변법에 대한 평가와 연계되어 있었다. 무술변법을 주도한 캉유웨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이 개혁을 무산시킨 서태후(西太后)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맞물려 웡통허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역사에서 특별한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무술변법이라는 중대한 사건에서 그가 캉유웨이를 황제에게 천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정한 평가를 받기에 족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태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이유


a 서태후

서태후 ⓒ 중국 위키백과

그런데 이 웡통허에 대한 중국 내의 평가가 최근 바뀌고 있다. 청사공정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이 웡통허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바 있듯이 종래에는 무술변법을 주도한 한족 신진 관료들이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이를 무산시킨 서태후 등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웡통허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 쪽에 속해 있었다.

변화는 바로 이 부분에서 생기고 있다. 청사공정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이 종래와는 달리 한족 신진 관료들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한편, 서태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정치적 측면에서는 분명 캉유웨이 등 한족 신진 관료들이 진보적이었던 게 사실이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서태후 쪽이 더 진보적이었다는 것이다. 서태후는 “서양 외교관들이 중국 황제를 알현할 때에 예법을 느슨하게 할 것”을 주장하는 등 오히려 진보적인 측면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학자들은 무술변법 주도세력이 과거제 폐지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웡통허는 이와 달리 과거제 폐지를 반대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 무술변법 당시 웡통허를 파면한 사람은 종래의 통설처럼 서태후가 아니라, 실제로는 웡통허의 제자인 광서제였다는 것이 중국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에 서태후의 부드러운 측면이 부각되는 한편, 웡통허나 무술변법 주도자들의 완고한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청사공정에서는 무술변법 주도자들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한편 그 정적인 서태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웡통허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만주족을 끌어안기 위한 표현

중국학자들이 이러한 재평가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국학자들의 의도는 지금 당장 무술변법 자체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혁명적’으로 뒤엎기 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무술변법 주도자들의 문화적 보수성을 비판하면서도 그 정치적 진보성은 여전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웡통허 재조명 작업의 진짜 의도는 무술변법 재평가가 아닌 다른 데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숨은 의도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만주족 끌어안기’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무술변법을 주도한 ‘한족’ 관료들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무술변법을 반대한 ‘만주족’ 서태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청나라 멸망 이후 소외된 만주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위한 의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부정적 평가를 받아 왔던 만주족 사람 서태후에게 후한 점수를 줌으로써 만주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만큼 한족이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웡통허란 인물이 재조명되는 것은 만주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나아가 새로운 통합 중국을 건설하려는 한족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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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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