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98회

제노사이드

등록 2006.10.31 18:40수정 2006.10.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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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 넌 실패할 리가 없었다. 내가 지닌 하쉬의 생명력을 너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었다.

보더아의 주위를 감싸던 오오라가 보랏빛으로 변했고 아누를 비롯한 주위에 있던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암울한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고향 아름다운 하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누는 보더아가 말한 의미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약 없는 우주 탐사를 떠나게 된 것은 하쉬의 예정된 운명 때문이었다. 하쉬는 파멸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먼저 하쉬의 궤도 자체가 언젠가는 모(母)행성인 오하길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결국에는 오하길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말 운명이었다.

계산대로라면 그 일은 먼 훗날의 일이 되어야 했지만 하쉬가 속한 태양계로 진입한 거대 해성이 오하길에 격돌하고 그 궤도를 뒤틀면서부터 모든 계산은 뒤틀리고 말았다. 언제 하쉬의 파멸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고 하쉬의 과학자들은 다가오는 파멸의 시간을 알아내는 것 보다는 하쉬의 생명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에 열정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쉬의 종말은 닥치고야 만 것이었다.

그들은 긴 침묵으로 하쉬의 파멸에 대해 충격과 슬픔을 나타내었다.

-그 날이 오고야 만 것이었군.


짐리림이 짙은 슬픔의 감정을 담아 토해놓듯이 말을 내 뱉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에아가 조용히 홀로그램 영상기를 작동해서 하쉬가 속한 태양계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비록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쉬의 모습은 분명 그 안에 살아있었다.

-이 곳에서 관측할 수 있는 하쉬의 모습입니다.

아누는 그것이 먼 과거에 있었던 하쉬의 모습임을 알고 있었다. 구데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는 하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의 씨앗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고압 전류 방전기를 툭 떨어트렸다. 아누를 납득 이해시켰다고 여긴 구데아는 광선총의 총구를 완전히 내리는 것으로 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더아, 아니 하쉬의 생명이시여.
-그렇게 격식을 차릴 건 없네 날 어떻게 불러도 좋아. 말해보게.
-내게 하쉬의 생명력을 나누어 주었다면 그것을 거두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까?

보더아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의 주위를 감사는 오오라는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는 않네. 내가 생명력을 나누어 줄 수는 있어도 그걸 거두어 갈수는 없어. 난 신이 아니라 하쉬의 생명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중에서 많은 세월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네. 내가 준 생명력은 아누 자네의 몸에 침입하는 가이다의 미생물을 막아주었고 ‘가이다’를 이끌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네. 그 영향으로 짐리림도 무사하게 된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굳이 당신의 말을 따를 것까지는 없군요. 우리는 모두 공평한 존재니까.

아누의 태도에 뭔가 변화가 있음을 눈치 챈 구데아가 광선총을 쥔 손을 덜컥 올리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아누는 바닥에 떨어진 전류방전기의 스위치를 발로 꾹 밟았고 보더아 쪽을 향하고 있던 전류 방전기는 바닥에 흐르듯이 전류를 방전시켰다.

-우아앗!

순식간에 보더아를 비롯한 구데아, 벨릴, 에아는 전기충격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버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짐리림은 비명소리에 놀라 소리쳤다.

-이봐! 대체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 건가?

아누는 그런 짐리림을 놓아두고 구데아가 떨어트린 광선총을 재빨리 집은 후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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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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