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04회

영원한 생존

등록 2006.11.10 17:01수정 2006.11.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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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였다고요?”

남현수는 속으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마르둑은 아이를 달래듯 차근차근히 설명했다.


“전 지구를 대표할 생명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를 찾아 이해를 구하라는 말을 하더군요. 남박사님이 지구를 대표하는 생명 중에서는 가장 큰 존재라서 그랬는데 남박사님이 보인 태도는 우리를 적대시하고 침입자로 간주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지도 않더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7만년과 기록에 남지 않은 그 이전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 뻔했습니다.”

남현수는 잠시 고개를 들고 다리를 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 자세로 서 있다보니 남현수의 온 몸은 뻐근했지만 아래로 보이는 푸른 숲이 남현수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남현수의 얘기는 마치 상대의 얘기를 무시하는 것만 같이 보였지만 마르둑은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하쉬인들이 ‘수이’를 무작정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보더아는 앞으로 지구를 주름잡을 생명체가 무엇인지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고 그 결과 인간종이 곧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 중에 지구의 생명을 대표할 개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냈지요. 그것이 수이였습니다.”

“잠깐.”

남현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르둑을 쏘아보았다.


“너희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가진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너희들도 솔직히 그 당시의 일을 얘기해야하는 것 아닌가? 너희들 말은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차라리 너희들이 슬레지엄인가 하는 무기로 지구의 생명을 쓸어버리고 하쉬의 생명을 심어 놓았다면 쉽지 않았을까? 아누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급하시군요. 게다가 말투도 점점 변해가고 있어요. 본성을 드러내고 있군요.”


“너희들이 다 알고 있는데 뭘 숨기겠나? 지금 난 남현수가 아니다. 지구의 생명 그 자체다. 너희들로 인해 7만년 동안 지구의 생명들은 신음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나타나 뭘 어쩌겠다는 거냐?”

“알고 계셨군요.”

“물론 난 알고 있지. 하지만 남현수는 몰라.”

남현수의 탈을 쓴 ‘지구의 생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남현수를 다시 데려올 테니 그를 납득시켜라. 난 어차피 과거 생명의 기억일 뿐, 상황이 변한 지금의 일까지 관여할 것까지는 없다.”

남현수의 몸이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남현수는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막 아프리카의 대지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마르둑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슬레지엄으로 지구의 생명을 공격하고 그곳에 하쉬의 생명을 심는 건 어떨까 하는 시뮬레이션도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저희들에게 비참했습니다. 지구 생명을 모조리 멸종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정착한 후 지구 시간으로 1천년 이내에 하쉬의 생명은 모조리 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군요.”

남현수는 마르둑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전투 후에 살아남은 하쉬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남박사님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남현수는 마르둑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마르둑이 무엇인가를 작동하자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하늘위로 선명한 영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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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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