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래서 믿을만한 현지인을 붙여달라는 거 아닙니까! 돈은 얼마든지 드린다니까요!”
남현수는 전화기를 붙잡고 때로는 강압적으로 때로는 애원조로 말했다. 케냐에 다녀온 지 6개월, 남현수는 다시 케냐로 가 과연 마르둑이 자신을 이용해 한 짓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현수는 케냐여행을 알선하는 여행사를 통해 자신이 갔던 곳으로 다시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손님, 그런 코스로는 저희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각서라도 쓰셔야….”
“아 그까짓 각서 쓸 테니까 어서 현지 가이드나 물색해 주세요!”
전화를 끊은 남현수는 소파에 깊이 기대어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마르둑을 너무 의심만 했던 내가 잘못이었어. 결국 마르둑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마르둑이 생명 그 자체라고까지 한 나는 아직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이렇게 허덕이고 있다. 이렇게는 끝낼 수 없어.’
한편으로 남현수는 마르둑에게 우롱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르둑은 지구의 생명 그 자체라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어떤 방법으로 하쉬행성의 생명체가 지구에 정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마르둑은 남현수를 통해 7만 년 전의 일을 되돌아봄으로써 무력으로서는 그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며 하쉬의 생명이라던 보더아가 남긴 실마리까지 찾게 되었다.
‘난 결코 그런 일을 제대로 허락하지 않았어. 그 놈들의 존재가 지구 생명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난 책임을 져야해.’
그러나 남현수의 케냐 행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지도 모호한 곳을 안내해줄 가이드는 없었고 기껏 나선 이도 남현수가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계약을 취소해서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남현수 역시 다른 일에 쫓기다 보니 계속 케냐로 가는 일만 신경 쓸 여력이 없어져만 갔다. 그런 남현수 앞에 갑자기 김건욱이 나타난 것은 케냐에 갔다 온지 8개월이 지난 후였다.
“무슨 일로 나타난 겁니까?”
캠퍼스를 거닐던 남현수는 자신의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김건욱에게 별로 놀라지 않고 오히려 시큰둥한 태도로 답했다.
“일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기계덩어리가 예의를 차리다니 놀라울 따름이군.”
남현수는 김건욱의 반응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말을 던진 후 그를 지나쳐 버렸다. 김건욱은 그런 남현수를 함부로 가로막지 못하고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
“케냐로 가서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남현수는 잠시 멈춰 섰다가 김건욱을 향해 쏘아붙였다.
“너희들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날 다시 한번 이용하려고 하는 거야?”
“남박사님!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저희들 탓을 하면 안 됩니다. 박사님이 마음을 열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십시오. 박사님 마음속에 깃든 ‘가이다’는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남현수는 김건욱이 지껄이는 소리가 마치 정신병자의 헛소리만 같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이 이젠 사람 많은 곳에서도 무슨 수작을….’
남현수는 고개를 돌렸지만 김건욱은 뒷걸음질을 치며 두 손을 올려 보였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남현수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며 잊혀진 기억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구, 하쉬 그리고 새로운 생명. 새로운 진화.’
남현수의 머릿속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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