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만한 꽃망울에 하늘을 담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82] 꽃마리

등록 2006.12.14 17:26수정 2006.12.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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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계란말이, 김밥말이, 꽃말이의 공통점은 '말이(말리다)'라는 말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둘둘 감겨있는 형상'을 떠올리면 '말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꽃대가 처음 나올 때 도르르 말려있어 '꽃말이'라고 불리던 꽃, 그 꽃의 오늘 날 이름은 '꽃마리'다. 꽃마리의 영어이름은 'Korean-forget-me-not'이니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담은 꽃 물망초(勿忘草)와 그 모양이 비슷하다. 한국산 물망초가 바로 꽃마리인 셈이다.


꽃마리는 아주 작은 꽃을 피운다. 도심에서도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피어나는 흔하디 흔한 꽃이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작은 꽃이다. 그 작은 꽃대에 솜털을 잔뜩 간직한 올망졸망 꽃망울들이 도르르 말려있는데 꽃몽우리 하나의 크기는 겨우 좁쌀만하다.

꽃대가 서서히 펼쳐지면서 좁쌀만한 꽃망울이 하나 둘 꽃을 피워내는데 처음에는 연한 연둣빛인가 싶다가 애내 맑은 하늘빛을 닮은 꽃을 화들짝 피운다. 좁쌀만한 꽃몽우리에 하늘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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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 꽃은 도대체 얼마나 작은 것일까? 그의 사촌격인 물망초에 전해지는 전설이 있는데 그 중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전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 같다.

@BRI@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간(아담)을 만드셨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은 이후 인간을 창조의 동역자로 삼고 창조한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의 이름을 아담에게 지으라고 하셨다. 아담이 붙여주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 살고있는 동물들과 나무들과 꽃들의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꽃이름은 아담이 붙여준 이름이다. 아담은 마지막으로 꽃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꽃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에덴동산을 걸었고, 그렇게 이름을 부를 때마다 꽃들은 방긋방긋 웃었다. 그런데 어떤 작은 꽃이 말을 걸어왔다.


"내 이름은 뭔가요? 왜 저의 이름은 지어주지 않은거죠?"

순간 아담은 이 꽃에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작아 보질 못했고 꽃이 말을 걸어왔을 때 비로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예쁜 꽃을 빼 놓았다니…말도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며 "네 이름은 나를 잊지 말아요('Forget-Me-Not)"란다. 다시는 네 이름을 잊지 않을게. 그래서 '물망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얼마나 작길래 아담도 그를 지나쳤을까?
꽃마리는 정말 작다. 그래서 피어있어도 보이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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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작아도 꽃은 꽃이다.
꽃밭에 피어나는 꽃만 꽃이 아니라,
보도블록 틈에 피어나도 꽃은 꽃이다.
풀섶에 숨어 피어나는 꽃만 꽃이 아니라,
사람들 틈에 끼어 짓밟히며 피어나도 꽃은 꽃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쳐지는 꽃만 꽃이 아니라,
파종하기 전 뿌리를 내렸다가 잡초처럼 뽑혀나가도 꽃은 꽃이다.
어디에 피어도 꽃이듯, 작아도 꽃이다.
꽃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그 곳의 모든 것을 껴안는다.
흙, 하늘, 바람, 별, 비 그리고 사람, 역사…
아무리 작아도 꽃이 꽃인 이유는
어디에 피어도 꽃이 꽃인 이유는
그들이 꽃이기 때문이다.
꽃은 꽃이라 꽃이라 부르고, 사람은 사람이라 사람이라 부르고,
산은 산이라 산이라 부르고, 강은 강이라 강이라 부른다.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이름이 있다.
이름 없는 꽃 하나도 없다.
아주 작은 꽃마리는 꽃마리라 부른다.
<자작시-꽃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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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겨울 기운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이른 봄, 아내와 산책을 하는 길에 꽃마리를 만났다. 지천에 피어있는 꽃마리를 화분에 옮겨심자는 아내의 제의에 몇 포기를 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실내로 들어오니 꽃대가 웃자라고 꽃은 피었으되 하늘빛을 담질 못했고, 그 작은 꽃은 더 작게 피었다. 그들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아무리 흔한 꽃이라도 그 곳에서 살아가게 했어야 할 것을.

비바람이 불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짓밟혀도 자신들이 뿌리를 내린 그 곳에서 가장 자기답게 피어나는 것이 꽃이다.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꽃을 우리는 야생화라고 부른다. 야생화라도 인간이 소유욕으로 손길이 다는 순간 원예종으로 변하는 것이다. 야생화에서 원예종으로 변하는 그 순간, 그들은 본래의 빛을 잃어버린다. 인간의 욕심, 그것은 모든 관계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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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개구리밥)가 있다.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살아가는 부평초, 그런데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도 바람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아간다. 잡초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의 종착지에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한다.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살아생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는 매일 스치는 꽃마리처럼 작은 이들이 있다. 그 작은 이들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그들의 야기를 듣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의 나의 삶이기도 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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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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