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 스러져가는 연꽃의 흔적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81] 두물머리의 연꽃

등록 2006.12.10 11:33수정 2006.12.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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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두물머리의 해넘이와 황포돛배

두물머리의 해넘이와 황포돛배 ⓒ 김민수

지난 2월, 봄마중을 한다고 두물머리에 들렀다. 더딘 봄, 두물머리로 걸어가는 길 한 켠에는 연꽃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꽃이 필 무렵에 꼭 와서 그들을 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 이 곳에 들르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눈소식이 들려오는 계절에야 이 곳에 다시 선 것이다.


a 스러져가는 연잎이 물 속에 잠겨있다.

스러져가는 연잎이 물 속에 잠겨있다. ⓒ 김민수

연꽃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줄기들은 이파리와 연밥이 무거웠는지 한결같이 고개를 물 속에 처박고 있다. 스러져가는 연꽃,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년 여름에 피어나는 연꽃에는 지금 스러져가는 저 연잎의 흔적이 들어 있을 것이다.

a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두물머리의 저녁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두물머리의 저녁 ⓒ 김민수


@BRI@두물머리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빛이란 참 묘하다. 하루를 여는 시간과 마감하는 시간, 그 시간 빛의 변화는 아주 빠르다. 빠르기에 열정적이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그래서 닮았다.

두 물이 합쳐지는 곳, 그래서 '두물머리'다.

그 곳에 떠 있는 황포돛배의 그림자와 돛배도 하나가 되었고, 그 곳을 찾은 연인들도 하나가 되었다.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잠시 차 안에서 몸을 녹이는데 김광석의 '변해가네'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는 왜 그렇게 가야 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노래의 느낌이 달라졌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그의 노래는 '삶에 대한 끈끈한 애정'으로 다가왔는데 그 이후에는 '삶의 회의 혹은 인생무상'의 느낌이다.


a 한때는 꼿꼿하게 꽃이며 이파리를 내었던 줄기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한때는 꼿꼿하게 꽃이며 이파리를 내었던 줄기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 김민수

a 물가에 심기운 나무, 투영된 자신들을 서로 바라본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 투영된 자신들을 서로 바라본다. ⓒ 김민수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 보단 너와 머물고만 싶네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 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 가네 / 우 너무 빨리 변해 가네'


a 말라비틀어졌어도 물방울을 맺은 모습은 연잎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말라비틀어졌어도 물방울을 맺은 모습은 연잎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우리는 남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얼마나 힘들어가며 살아가는가? 그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자신이 변하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그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그러나 그 변함이란, 변질이 아니다. 변질 아닌 변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물방울을 맺고 있는 스러져가는 연잎은 여전히 자기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

a 두물이 합쳐지는 곳, 황포돛배의 그림자도 그와 하나가 된다.

두물이 합쳐지는 곳, 황포돛배의 그림자도 그와 하나가 된다. ⓒ 김민수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은 사람뿐 아니라 꽃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꽃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스스럼없이 놓아버릴 줄 앎으로써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지켜간다. 그래서 자연이다.


a 어쩌다 토끼풀이 저 곳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어쩌다 토끼풀이 저 곳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 김민수

언제 우리는 마음이 통할까? 세잎클로버와 연잎, 그 둘은 동병상련, 서로를 바라보며 껴안고 살아가는 세월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물 혹은 흙과 하나되는 그 시간까지 함께 하다 하나가 될 것이다. 두물머리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다. 강물도, 연인도, 들꽃도 하나가 된다.

a 멀어질수록 희미한 산들, 멀어질수록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추억들...

멀어질수록 희미한 산들, 멀어질수록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추억들... ⓒ 김민수

멀리 있으면 더 아련하고 그리운 법인가 보다. 내 가까이 있는 것들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늘 먼 곳에 있는 것만 동경하며 살아간다. 저 아련하게 보이는 그 곳을 지나 왔는데 이제는 다시 그 곳이 그립다. 그 곳에 가면 또 이 곳이 그립겠지.

a 그들이 잔잔한 물 위에 쓴 편지는 무슨 내용일까? 해독할 수가 없다.

그들이 잔잔한 물 위에 쓴 편지는 무슨 내용일까? 해독할 수가 없다. ⓒ 김민수

그들이 물에 남긴 편지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처럼 보였다. 그들의 마음이 다 읽혀지면 신비감이 사라질까?

인부들이 스케이트장으로 만들기 위해 물 위로 나온 연들을 쳐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편지가 다 지워져도 그들은 여전히 또 피어나고 다시 읽혀지지 않는 편지를 물 위에 쓸 것이다. 그 많은 내용 중에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문장쯤은 들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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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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