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위화도의 밤

[태종 이방원 14]위화도회군 1

등록 2006.12.18 12:20수정 2006.12.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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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4월 18일 서경(평양)을 출발한 요동정벌군은 북으로 진군했다. 정벌군 총사령관에 팔도도통사 최영 장군, 좌군도통사에 조민수 장군, 우군도통사에 이성계 장군이 명(命) 받았지만 최영 장군은 평양에 남아있어 좌군도통사 조민수 장군이 선임지휘관이다.

안주와 정주를 지나는 길목에 환송하는 백성들도 없었다. 들녘에서 농사짓던 농부들의 시선도 싸늘했다. 먹고살기 힘든데 전쟁은 무슨 전쟁이냐? 하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군사들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사기를 먹고사는 것이 군인인데 백성들의 환호는커녕 지휘관의 얼굴이 어두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5월 7일 정벌군은 고려와 명나라의 국경을 가르는 압록강에 도착했다. 때마침 우기를 맞아 불어나기 시작한 강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부랴부랴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강 중간에 있는 위화도에 군영을 마련했다. 행군에 지친 군사와 마필을 쉬게 하며 부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병사들이 쉬는 동안 이성계는 전략을 점검하기보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국경을 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BRI@위화도. 이성계로 말미암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압록강 하류의 수중 섬이다.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 중에서 제일 큰 섬이다. 위화도가 압록강 중간에 있는 섬이지만 엄격히 말하면 중간이 아니라 명나라 쪽에 가깝다.

바로 옆에 있는 황금평의 모래톱은 썰물 때면 아예 명나라 쪽으로 붙어버렸다. 그밖에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은 조개껍질처럼 압록강에 엎어져 있었다.

우리는 위화도라 부르지만 명나라는 강심도(江心島)라 부른다. 강물은 공동으로 이용하지만 소유권은 고려에 있다고 명나라가 인정한 고려의 영토다. 대부분 갈대 우거진 황무지라 물새들의 천국이었다. 억척스러운 고려의 농부들이 버려 둔 땅에 나룻배 타고 건너다니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군영에서 북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강 건너 명나라 땅이 손에 잡힐 듯하다. 고개를 돌려 동남쪽을 바라보았다. 의주를 감싸고 있는 구룡산이 아스라하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고려 본토보다도 명나라에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제 여기를 떠나면 국경을 넘는다. 등줄기에서 전율이 전해져 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강 건너 명나라 땅을 바라보며 이성계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제까지는 우리 나라를 우리 군사가 통과했지만 여기에서 다시 출진하면 명나라 땅을 밟는다. 국경을 넘었을 때 불어닥칠 후폭풍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 못 이루는 위화도의 밤

정벌군에는 노략질을 일삼다 붙잡혀 전쟁에 끌려온 왜구 포로들도 포함돼 있어 전쟁에 대한 동기 부여가 없었다. 덩달아 퍼붓는 빗줄기 속에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탈영병이 속출했다. 우선 출병을 거두어달라고 평양에 있는 최고사령관 최영 장군에게 사람을 보냈다.

보고를 받은 최영 장군은 "조민수, 이성계 두 장수가 직접 와서 주상(主上)께 아뢰어라. 나는 결코 군사를 물리치자는 말을 임금께 하지 못하겠다"

단호히 거절했다. 난감했다. 앞날이 아득했다. “이대로 진격해?” 하지만 결과가 두려웠다. 국토는 초토화되고 피 흘리는 백성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조민수, 이성계 두 장수는 임금에게 직접 장계를 올렸다.

"신(臣) 등이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으나 비로 인해 물이 넘쳐 물에 빠진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됩니다. 이곳으로부터 요동성(遼東城)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는 큰 내가 많이 있으니 잘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갑옷은 무거우며 군사와 말이 모두 피곤하여 지쳐있습니다.

이를 몰아 견고한 성(城) 아래로 간다면 싸워도 승리함을 기할 수 없으며 공격하여도 빼앗음을 기할 수 없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군량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으니 장차 이를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군사를 돌이키도록 특별히 명하시어 백성의 기대에 보답하소서."(태조실록)


이에 우왕은 환자(宦者) 김완을 보내어 두 장수의 청을 거절하고 군사를 전진하도록 독촉하였다. 실낱같은 기대에 차있던 군영은 일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기를 맞아 추적거리는 빗줄기마저 군사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고 군영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이성계는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고 최고사령관 최영 장군에게 다시 한 번 사람을 보내어 청했다.

긴장감이 흐르는 정벌군 막사

"병사들이 굶어죽고 사기가 떨어져 도망하는 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물이 불어 행군하기 어려우니 군사를 돌릴 것을 명하여 주십시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같은 군 출신으로 군사를 지휘하는 애로사항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군영의 실상을 전했다. 하지만 최영 장군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도망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라."

불호령만 떨어졌다. 한 가닥 희망마저 끊어지는 심정이었다. 군영은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부싯돌만 그으면 금방이라도 불길이 번질 것 같은 긴박감마저 흐르기 시작했다.

진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군영에 묘한 기운이 감돌며 툭 치면 터질 것만 같았다. 정벌군이라면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해야 하는데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성계 장군이 자기 휘하의 친병을 이끌고 동북면으로 떠나기 위하여 말에 올랐다."

근거 없는 소문도 나돌았다. 군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조민수 장군이 홀로 말을 달려 이성계의 군막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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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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