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도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21] 함해만의 일몰과 일출

등록 2007.01.02 11:18수정 2007.01.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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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일번국도를 냅다 내질렀다. 해가 벌써 영산강을 가로질러 금정산을 넘는다. 30분만 빨리 출발할 걸 후회했다. 함평에서 샛길로 접어들었다. 이럴 때 가까운 곳에 차를 놓고 기다려야 한다.

@BRI@주포로 접어들었다. 해가 갯벌을 적시며 돌머리를 지나 막 해제반도를 넘는다. 다행이다. 산자락에 걸린 해는 갯벌에 줄을 달고 마지막 힘을 쓴다. 아직도 노을이 아름답게 빛을 내뿜는데 성질이 급한 사람들 자동차 불빛을 올리고 갯벌을 빠져 나온다. 갯벌에 남은 사람들은 입구에서 장작불을 피우며 술을 죽이고 있는 몇 사람, 갯벌탐방로를 따라 걷는 연인, 인공해수풀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과 두 가족 뿐이다.


연인이 두 손을 꼭 잡고 몇 백 미터는 될 탐방로를 걸어갔다 나온다. 기찻길 침목으로 만들어 놓은 탐방로를 징검다리 건너듯이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며 무어라 속삭였을까. 부럽고 궁금하다. 이들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언제가 이들은 다시 이곳을 찾을지 모른다. 노을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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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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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새벽 4시 휴대폰이 날 깨운다. 어제 저녁 일찍 잠을 청했다. 지난해 너무 아름다운 '아침해'를 봤기 때문이다. 도리포에서 봤던 아침 해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다시 일번국도를 달렸다. 이번에는 함평을 지나 무안에서 지도와 해제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해가 떠오르면 두 시간 이상 남았는데 입구에서부터 차들이 엉켜있다.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였다. 이번에는 폭죽소리에 잠시도 쉴 겨를이 없다. 게다가 포구의 여명은 터지는 폭죽 불빛으로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해님이 작년에 너무 힘들었나봐.'
'올해는 좀 쉬었다 나올란가봐.'


동쪽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진다. 작년 한 해 사람살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새해를 맞이하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빌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소원을 적은 풍선을 붙잡고 있던 아이들이 아쉬운 듯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 많은 소원과 바람을 들어주기 힘들었던지 해님이 구름 뒤로 숨었다. 내년에는 활짝 웃는 해님을 보고 싶다.


해님, 올 해도 건강하고, '떠남'과 '돌아옴'에 사고 없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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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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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덧붙이는 글 | 지난해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에 많은 관심을 주신 네티즌과 시민기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겨우살이를 하고 있을 갯벌의 뭇생명들과 겨울농사를 짓고 있을 어민들, 봄을 기다리는 칠게와 실뱀장어, 주꾸미와 낙지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받은 '큰 상'은 이들이 준 지혜 때문입니다. 올해도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전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해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에 많은 관심을 주신 네티즌과 시민기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겨우살이를 하고 있을 갯벌의 뭇생명들과 겨울농사를 짓고 있을 어민들, 봄을 기다리는 칠게와 실뱀장어, 주꾸미와 낙지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받은 '큰 상'은 이들이 준 지혜 때문입니다. 올해도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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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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