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큰애기 쌀 서말 먹기 힘들었다'

[섬이야기 54] 전남 완도군 보길도 2

등록 2007.01.10 15:51수정 2007.01.11 07:55
0
원고료로 응원
a 땅끝에서 보길도에 이르는 뱃길을 차가운 갯바람을 맞고 밖에서 섬과 바다를 보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들

땅끝에서 보길도에 이르는 뱃길을 차가운 갯바람을 맞고 밖에서 섬과 바다를 보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들 ⓒ 김준

땅 끝에는 몇 척의 삼치잡이이 배가 찬바람에 몸을 낮추고, 포구에 장승처럼 몸을 박은 크레인이 김 자루를 올리느라 바쁘다. 그러고 보니 김 양식이 제철을 만났다. 심상치 않는 바람에 새우를 잡다 온 조망배 안에서 찬바람을 벗삼아 털어온 새우에서 간재미를 골라낸다.

@BRI@땅끝 마을 주민들의 10여 미터의 굵은 대나무 망대로 그물입구를 벌리고 바다 속을 끌고 다니며 새우를 잡는다. 이들이 잡는 새우는 붉은 색을 띠고 있어 '꽃새우'라고도 한다.


새우잡이는 물살이 빠른 사리를 제외한 물때에 조업하며, 김 양식을 하지 않는 어민들의 겨울철 생업이다. 통발로 독게를 잡던 노부부도 힘겹게 배를 정박시킨다. 아직 주의보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배들은 하나 둘 포구로 돌아온다.

배안은 몇 쌍의 연인과 가족들, 대형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관광객들로 겨울철의 쓸쓸함은 찾기 어렵다. 여객선은 물론 외지 배들이 보길도를 들고 나는 길이 청별항이다. 머지않아 연도교가 완공되어 해남의 땅끝과 완도의 정도리에서 오가는 시간이 짧아지면 더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반갑지 않는 소식이 들려온다. 폭풍주의보가 내릴 것이란다. 젠장, 20여 년 만에 맘먹고 나선 길인데 뭔 놈의 훼방꾼들이 이리 많담. 이런 생각도 잠시, 그렇지! 좋은 곳에 왔으니 하루 더 있다 가라는 것이지.

a 섬에 들어오면 나가는 일은 하늘의 뜻이다. 뱃길을 묶은 바람 덕에 하루를 더 즐겼다.

섬에 들어오면 나가는 일은 하늘의 뜻이다. 뱃길을 묶은 바람 덕에 하루를 더 즐겼다. ⓒ 김준



보길도 큰애기 쌀 서말 먹고 시집가기 어려웠다


보길도는 서남쪽으로 망월봉(364)-격자봉(433)-수리봉(406)-광대봉(310)이 능선을 이루며 고산이 자리를 잡았던 부용동을 감싸 분지를 이루고 있다. 논은 거의 없다. 부용리와 부황리을 감싸 도는 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약간의 논과 근래에 월송리와 통리 사이 간척지가 전부다.

보길도의 경지면적은 전국의 평균 경지면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인근 섬들 중에서도 적다. 그래서 30여 년 전까지 고구마와 보리가 식량이었다. 오죽했으면 '보길도 큰애기 쌀 서말 먹고 시집가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겠는가. 1960년대 백도, 통리, 중리, 여황리 일대에 지주식 김양식이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부류식 김양식과 톳양식이 주소득 원이었다.


청별항을 기점으로 백도, 중리, 통리, 예송리 등 동부는 톳양식과 전복양식 등 기르는 어업이 중심이며, 선창, 보옥리, 정자리 등 서부는 멸치, 돔 등 활어를 잡는 어업이 발달해 있다.

노화도와 소안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이 감싸고 있는 동부마을들은 갯벌이 발달해 일찍부터 지주식 김양식이 시작된 마을들이다. 반면에 추자도와 제주도로 이어지는 터진 바다 서부 지역은 멸치잡이가 중심이었으며 최근에는 정자리 등 일부 지역에서 전복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멸치잡이를 가장 많이 하는 선창리의 경우 총 120여 호 중 24호가 멸치잡이를 하고 있으며 나머지 가구들은 연승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길도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문제다. 신안 비금과 완도 노화에서 운영되던 대우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 지역의 주민들의 의료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뱃길로 5분이면 갈 수 있던 병원이 문을 닫자 급한 경우 뱃길만 1시간여 걸리는 해남과 완도로 나가야 하며, 그곳에서도 병원까지 가는 길은 물론 병원도 낯설기만 하다는 것이다.

섬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던 예전과 달리 육지병원은 치러야 할 절차들이 까다롭다. 교육문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지만 의료문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a 과거에 농지가 많고 물길이 좋아 부자마을 소리르 들었던 부용리의 보리밭

과거에 농지가 많고 물길이 좋아 부자마을 소리르 들었던 부용리의 보리밭 ⓒ 김준

a 멸치잡이를 많이 하는 선창마을, 멸치 삶는 막이 줄지어 있다.

멸치잡이를 많이 하는 선창마을, 멸치 삶는 막이 줄지어 있다. ⓒ 김준



바다농사만이 살길이다

보길도의 최초의 양식어업은 지주식 김 양식이었다. 1970년대 정자리, 정동리의 갯벌을 중심으로 말뚝을 박아 발을 매어 김 농사를 지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예송리, 통리, 중리, 여항리, 백도리 등을 중심으로 톳 양식이 시작되었다.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던 톳은 지주식 김 양식을 대체할 만큼 주목되었지만 수출길이 제한되면서 1990년대 후반 새로운 모색을 해야 했다. 땅에 짓는 농사와 달리 바다농사는 생산자 스스로 가공하고 저장하기 어렵다. 그리고 상품지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시장의 흐름에 따라 어민들의 품목선택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내수시장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 일본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시기 고금, 약산, 신지 등 완도 체도 인근지역에서는 김과 미역양식에서 가두리양식으로 대대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양식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어장이 오래되어 양식이 잘 되지 않고 품질도 새로운 어장에 비해서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규모로 김양식을 했던 어민들은 새로운 어장을 찾아서 서해안 연안을 따라 북상길에 올랐다. 1990년대에는 전라북도 고창과 부안을 거쳐 충청도 서천 그리고 멀리 경기만까지 양식지를 찾아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일부 톳양식이 다시마와 미역양식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다시마와 미역은 전복의 먹이용으로 이용되었기에 더욱 확산되었다. 바다와 접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은 70%이상이 전복양식을 하고 있다.

양식어업이 발달하면서 농지를 가지고 있어 부자마을이었던 부용리와 부황리는 가난한 마을이 되었고, 백도리 등 가난한 마을들은 보길도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이 되었다. 옛날 전복은 중환자들이나 시제 등 큰 제사에만 올라갔던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처럼 쪄먹고 회로 먹고, 삼계탕에 넣어서 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보길도 주민들은 전복이 보다 대중화 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을 것으로 생각한다.

a 전복양식 시설을 만들고 있는 예송리 해수욕장, 전복양식 시설은 전문 업자들이 만든다.

전복양식 시설을 만들고 있는 예송리 해수욕장, 전복양식 시설은 전문 업자들이 만든다. ⓒ 김준


a 예송리 주민이 전복양식 시설을 수선하고 있다.

예송리 주민이 전복양식 시설을 수선하고 있다. ⓒ 김준


고향 떠난 젊은 사람들 고향을 기웃거린다

고산의 유적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중리와 통리 그리고 예송리 해수욕장이 알려지면서 보길도는 최근 민박용 주거개선이 한창이다. 그런가 하면 청별항에는 10여 개의 식당과 너 댓 개의 숙박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다. 최근 보길도는 고향을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면 고향에서 바다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와 전복양식 등으로 재미를 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둘 고향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번 구정에 고향을 변한 모습을 보고 또 몇 사람이 집을 싸들고 아이들 손을 잡고 돌아올지 모른다.

보길도에는 다른 섬과 달리 아이들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식당에는 심심찮게 젊은이들이 모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친목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이게 모두 전복양식을 하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 일은 힘은 들지만 정년이 없다.

전복양식은 김양식이나 톳양식과 달리 시설비용이 만만치 않다. 바다에 떠 있는 바둑판처럼 여러 개의 네모난 칸들이 모아져 있는 것들이 전복양식 시설이다. 가로 세로 5미터 쯤 될까 말까 한 칸 시설비용은 40여만원, 여기에 그물까지 넣으면 70여만원에 이른다. 그리고 시설에 넣는 전복 치패의 양에 따라 시설을 포함한 비용은 200만원에서 250만원에 이른다.

전복양식을 많이 한 사람들은 1000칸에서 1500칸, 보통은 수백 칸 규모의 양식을 하고 있다. 양식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전복이 크는 정도에 따라 들어가는 양을 조절해야 한다. 이렇게 3년은 자라야 상품으로 판매된다. 결국 3년 동안에는 돈 맛을 보지 못하고 계속 투자를 해야 한다.

목돈을 갖고 있지 못한 어민들은 담보물을 금융기관에 저당 잡히고 빚을 내야 한다. 흔히 전복양식을 하는 사람들은 '100만원을 1만 원짜리 사용하듯 한다'는 말을 한다. 전복이 판매되면 다시 어린 전복을 사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5년에서 7년 정도 아무 탈 없이 양식을 해야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톳양식의 경우는 목돈이 들어가지 않고 일 년 단위로 수확을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적잖은 주민들이 생업으로 하고 있다. 일 년이면 적으면 3천만원에서 좀 양이 되는 주민들은 7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복양식을 한다고 매양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지난 어느 해 매미처럼 대형 태풍이 심통을 부리면 한꺼번에 전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여기에 주민들끼리 연대보증이라도 했다면 주민 모두 신용불량에 차압을 당해야 한다.

a 양식장 위로 떠오른 보길도의 일출

양식장 위로 떠오른 보길도의 일출 ⓒ 김준



전복, 보길도의 희망이다

갯돌과 마을숲으로 유명한 예송리의 주민들은 해수욕장 앞 '큰바다'와 보옥리 사이 '큰기미'에서 김, 미역, 톳 그리고 전복양식을 하고 있다. 계절풍을 막아내는 상록수림과 격자봉 사이에 1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예송리는 70여 호가 양식을 하고 있다.

남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파도와 바람이 강해 다른 지역보다 늦게 전복양식을 시작했다. 큰바다를 일정한 크기로 나누어 가구별로 자리를 정해 양식을 한다.

바다농사도 육지의 농사처럼 잘 되는 곳이 있고 잘되지 않는 곳이 있다. 가구가 지금보다 훨씬 많고 양식자리가 크지 않던 시절에는 큰바다를 세 곳으로 나누어 매년 이동하며 양식을 했다. 일종에 형평성을 고려한 어장운영규칙이었다. 인근 여향리와 중리, 통리를 비롯해 완도지역의 대부분 어촌이 같은 방식으로 어장을 운영해 왔다.

a 예송리 주민들이 바다농사를 짓는 예송리 해수욕장 앞 '큰바다', 왼쪽에 보이는 섬이 예작도로 소설 봄날의 무대가 되었던 꽃섬이다.

예송리 주민들이 바다농사를 짓는 예송리 해수욕장 앞 '큰바다', 왼쪽에 보이는 섬이 예작도로 소설 봄날의 무대가 되었던 꽃섬이다. ⓒ 김준

a 보길도에 전복양식을 가장 많이 하는 백도리

보길도에 전복양식을 가장 많이 하는 백도리 ⓒ 김준

보길도를 포함한 인근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생산하는 전복이 전국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곳 바다는 청정해역과 원활한 조류와 적절한 수온 등 전복양식의 적지로 꼽힌다. 주민들도 전복양식을 새로운 소득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2000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복양식은 금년이면 정상궤도로 올라설 전망이다. 전복양식은 다른 양식업과 달리 3년 이상은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과정을 고려할 때 이제 제대로 돈맛을 보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한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2007년 완공예정이지만 2008년이 되어야 겨우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에 힘을 가진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전 국회의원이 노화 출신으로 연도교사업에 큰 힘을 주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갖기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느릿느릿 섬을 둘러보고 바다를 보면 선창의 멸치잡이, 백도의 전복양식, 예송리의 톳양식, 아기장수의 설화가 깃든 예작도, 신기가 가득 서린 예송리 당집, 통발로 낙지 잡는 보길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보길도에 머물렀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보길도에 머물렀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