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나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자"

일본 역사학자들, 중·일 역사학술회의에서 제안

등록 2007.02.01 11:20수정 2007.02.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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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나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고 싶다는 일본측의 희망사항이 표출된 <주간 아사히>의 칼럼. ⓒ <주간 아사히>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의 바다' 비공식 제안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이 좋지 않은 편이다.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는 1월 29일 논평을 통해 "노골적인 일본 편들기"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BRI@일본의 반응은 '어딘가 석연치 않고 떨떠름하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해라는 명칭이 이미 세계적으로 거의 공인되다시피 했는데, 굳이 한국의 제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언론 보도를 통한 일본측의 속마음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다케시마에 관한 양보를 하지 않는 한 그의 '평화의 바다' 제안도 믿을 수 없다"(1월 26일자 <산케이신문> 및 같은 날짜 <오마이뉴스> '산케이신문, 노무현 연두회견은 역사곡해' 참조)는 것이 일본측의 가장 표면적인 반응이다.

'평화의 바다' 제안에 대해 일본이 소극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이 '챔피언'의 입장에 있어서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측의 '평화의 바다' 제안에 대해 소극적인 일본이 중국 측에 대해서는 유사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물론 정부의 공식적 루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민간의 학술적 루트를 통해서다.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발행하는 <주간 아사히>(週刊朝日) 2월 2일호에 의하면, 2006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양국 학자들의 역사학술회의에서 일본 학자들이 그 같은 의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후나바시 요우이찌(船橋洋一)는 <주간 아사히>에 연재하는 칼럼에서, 중·일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간극(間隙)을 메우기 위한 위 학술회의에서 "동지나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는 21세기 일·중 평화의 시금석"(東シナ海を ‘平和の海’にすることができるかどうかは、21世紀の日中平和の試金石である)이라는 일본측의 의견개진이 있었다고 소개하였다. 그림에서 블록을 설정한 부분이 바로 그 표현이다.

동지나해를 '평화의 바다'로 제안한 일본의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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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인용된 칼럼의 해당 부분. ⓒ 김종성


그는 "동지나해를 비롯하여 일·중이 문명적으로 공존해 온 바다의 역사와 그로부터의 교훈을 시야에 넣고 싶다"(東シナ海をはじめ日中が文明的に共存してきた海の?史と、そこからの?訓も視野に入れてほしい)는 일본측 학자들의 의견 개진을 소개하면서 위와 같이 말하였다.

후나바시는 이 회의에서 '의외로 어려웠던' 몇몇 의제로서 동지나해 표기 문제 외에도 ▲청일전쟁·러일전쟁의 자리매김 ▲중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중국 멸시 감정의 배경과 구조 ▲중일전쟁·태평양전쟁과 일본 패전의 상호 연관성 ▲한국전쟁의 원인 ▲문화대혁명의 해부 ▲일본 국왕(소위 '천황')의 중국 방문과 장쩌민 전 주석의 일본 방문에 대한 평가 ▲천안문 사태 등이 있었다고 소개하였다.

이러한 <주간 아사히>의 칼럼을 통해 '평화의 바다' 문제에 관한 일본측의 정서를 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측의 속마음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바다는 평화의 바다로 부를 수 없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바다는 평화의 바다로 부르고 싶다'는 것이다. 중·일 학술회의 발언이 공식적인 일본 정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학자들의 발언은 일본측의 속마음을 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일본해'는 평화의 바다로 부를 수 없지만 '동지나해' 만큼은 평화의 바다로 부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일본해'에 관한 한 일본이 챔피언이고, '동지나해'에 관한 한 일본이 '도전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공인되어 있는 동지나해라는 명칭 대신에 평화의 바다가 채택된다면 일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일 것이다. 반면, 중국으로서는 자국이 '챔피언'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논의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일본측의 분위기를 보면, 한국측의 '평화의 바다' 제안에 대해 일본측이 떨떠름해 하면서 특별한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평화의 바다 제안이 동해 명칭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일본해 명칭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중·일 역사학술회의는 2005년 4월 중국의 대규모 반일 데모에 당황한 일본측의 제안에 의해 성사된 것이다. 반일데모 직후 중국을 방문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당시 일본 외상이 탕쟈 중국 국무위원과의 회담에서 처음 제의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으며, 2006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비로소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회의에서는 쌍방에서 각각 10명의 역사학자가 참가하였으며, 일본측 좌장(座長)은 도쿄대학 기타오카 신이찌 교수이고 중국측 좌장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부핑(步平) 소장이었다. 제2차 회의는 오는 3월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후나바시 요우이찌는 1944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이래 베이징지국-워싱턴지국을 거쳐 미주 총국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아사히신문>에 '일본의 세계', <주간 아사히>에 '후나바시 요우이찌의 세계 브리핑'을 연재하고 있다. <일본의 대외구상> 등 총 35권의 저서·공저·편서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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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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